유현희 의 ‘사람 중심’의 연구개발(R&D)
유현희 의 ‘사람 중심’의 연구개발(R&D)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와 자부심으로 열악한 환경, 지나친 규제와 간섭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며 연구했다.

하지만 국가와 조직을 위한 책임과 의무감으로 하는 연구개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연구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사고도 변해야 한다.

2019년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이 최초로 20조를 넘어 섰고, 국가 GDP 대비 R&D 투자 비중도 4.5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정부의 지속적인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피인용 상위 1%의 최우수 논문 점유율은 세계 15위에 머무르고 있다. 높은 R&D 투자 비중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과는 아직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의미로 모순, 역설이라는 의미의 ‘패러독스’를 붙인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투입 비용 대비 질적 성과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으로 우리나라 R&D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정부는 지난해 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국가R&D혁신방안’을 발표하였다. 요약하자면 ‘사람중심으로 R&D를 혁신하자’는 것으로, 연구자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관리적 요인들을 최소화하고 연구 자율성을 확대하여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누구보다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한다. 이러한 연구자의 특성을 반영하여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계획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나 지원기관 중심으로 짜놓은 틀에 끼워 맞추다 보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에 한계가 있고 쉬운 연구에 치중하여 지식 축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창의적인 성과 도출을 위해서는 연구 주제 선정부터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종합적인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과학 기술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환경적 가치도 함께 고려되어야 다양하고 혁신적인 연구 주제가 도출될 것이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AI)도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실현 가능한 건가요?’, ‘경제성이 있겠어요?’, ‘5년 안에 성과나옵니까?’ 등의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코리아 R&D 패러독스’를 탈피할 수 있다.

연구수행 단계에서도 ‘기획-선정-수행-평가-활용’ 등 R&D 전 주기에서 연구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연구자가 기획에서부터 성과활용까지의 ‘시작과 끝’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결과가 뛰어난 성과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보상 체계가 이뤄진다면 우수성과 도출에 대한 의지가 보다 고무되어 창의성과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연구 과제마다 고유의 목적과 특성이 있으므로 모든 연구에서 창의적 성과를 위해 연구 자율성을 우선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연구’, ‘개인연구’로 일컬어지는 혁신과제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연구수행 방식에서 벗어나 연구주제 선정 단계에서부터 다양하고 새로운 연구 주제가 도출되어야 한다. ‘단기 성과’에서 ‘미래지향 성과’ 중심으로, ‘관리자 중심’에서 ‘연구자 중심’으로 변화를 통해 창의적이고 질적으로도 우수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중심’의 변화가 우리나라가 R&D 패러독스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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