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강동완

사람의 관심사항에 따라 과거형, 현재형, 그리고 미래형 인간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과거형만이 아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은 과거를 지혜로 삼거나 현재에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1970년대 대학시절 동아리 하나를 만들어 음악, 미술, 문학, 연극 활동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었다. 그때 1년에 한 번씩 잡지를 만들었는데 회원들이 창작한 시, 수필, 평론, 단편소설들을 실었다. 그런데 마음먹기보다 회원들이 글쓰기가 쉽지 않아 마감시간이 지나도 글을 보내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내 책임으로 많은 글을 쓰고 회원이름으로 올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내 글쓰기는 시작되었는데 열정과 책임이 없었다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 문학과 사회문제 그리고 예술과 사랑은 나의 주요 관심사였다.

최근 이효석문학관을 방문하였다. 청년시절의 문학에 대한 기억을 살리고자 관심 있게 보고 싶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선생이 "동"이라는 카페를 자주 찾아가 측음기로 클래식음악을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문학관 앞에는 "동" 이라고 하는 카페가 있었다.

궁금증이 있어 카페에 들어가 일하고 있는 두 여성에게 물어 보았다.

동이라는 카페가 어디에 있었느냐? 는 질문에 봉평리 어디쯤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거나? 혹은 러시아에 있지 않았을 까? 하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난 그때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왔다. 요즈음 일자리가 없다고 하여 불평불만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일자리 이전에 일자리에 임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마음 가짐, 태도 만 좋으면 일거리가 많이 있을 것이다. 청년들에게 세상이란 사다리를 타는 것과 같다. 사다리를 타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것이 청년 시대의 일이다.

문학관에 들어가 해설사로 부터 설명을 듣는 중 "동"이라는 카페가 함경북도 경성시 근방 나남이라는 휴양지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30년대 블라디보스톡과 함경북도가 가깝기에 공산당 혁명 후 나라잃은 설움을 지닌 옛 러시아 부유층들이 그곳 온천 휴양지에 많이 찾아오기에 러시아풍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1907년생인 이효석선생은 그곳 함경북도 경성 출신과 결혼했고 그곳에 머물 때 카페 "동"을 자주 찾아가 축음기로 재현되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나라 잃은 설움으로 친일과 민족주의자로서 양날의 칼날위을 다니면서 자유주의적 서정성과 향토성을 노래했던 작가가 어떤 음악을 들었을 까 상상해 본다.

그는 당시에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기에 서양음악의 탐미적 요소를 느끼고자 했을 것이다. 비애적이고 심미적인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