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 대나무공예가

대나무 엮기의 ‘달인’ 자타가 공인
공공건물 대나무 인테리어 전문가로 ‘우뚝’
세계대나무박람회장·기후변화체험관도 그의 작품

▲장성원 공예가
▲장성원 공예가

 “변화에 대비하려 공예인의 길 들어섰지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준비한 자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특별한 솜씨를 가졌다 해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현상 유지도 어렵고 뒤처질 수밖에 없다. 동물이나 인간이 진화하듯 모든 산업도 진화한다. 그러니 공예분야도 진화 할 수밖에 없다. 변화에 발맞추어 가려면 시대 흐름을 읽고 예측해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대나무공예가로 널리 알려진 장성원 명인은 대나무공예에 경영마인드를 접목해 시대 변화를 읽고 준비한 탓에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담양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눈만 돌리면 지천으로 깔린 대나무였기에 대나무가 친숙했다. 집집마다 대나무로 제품을 만들어 팔 정도로 대나무를 생계수단이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도 참빗을 만들었다. 참빗은 생계에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그도 총각 때 참빗을 만들었다. 하지만 딱 한 번 팔았을 뿐이었다. 그 후 바로 참빗 만들기를 접었다. 플라스틱 제품의 홍수 속에 참빗이 설 자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열여덟 살에 취직했다.
대나무로 대자리와 문발을 만드는 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닦았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해 좀 더 큰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대자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10년 정도 일했지만 갈수록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계속 근무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그곳을 그만두고 굴삭기 자격증을 따서 일할 생각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친척이 만류했다. 친척은 대자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좋은 솜씨가 아깝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가게를 저렴하게 임대해 줄 테니 기술 썩히지 말고 장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배운 게 대자리 기술뿐이라 친척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게를 10년 간 운영했다. 대자리는 여름에 팔리지만 제작은 겨울에 집중적으로 하고 5월부터 출고했다. 그런 일을 10년 동안 했는데, 저축한 돈이 고작 삼천만 원이었다. 따져보니 1년에 삼백만 원을 저축한 셈이었다. 물론 먹고 쓰긴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를 해야 할까.’
그런 고민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거라는 뉴스가 떴다. 언론에서 주5일 근무제를 연일 다루었다. 주말에 자기계발을 하라고 충고했고, 유명 관광지가 소개되었고, 인생 제2막을 염두에 두고 기술을 배워 대비하라고도 했다. 그는 시대가, 삶이 획기적으로 변할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준비해야 했습니다. 주말에 관광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고, 관광객들에게 팔 물건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공예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담양에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담양군에서 죽녹원을 조성했는데 그는 죽녹원에서 대나무공예품을 팔았다. 대나무를 소재로 한 고무줄과 유희기구인 공기볼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대자리만 만들때는 다 만들어놓고 나면 한가해서 4,5 개월은 쉴 수 있었는데, 공예품이 대박나니 쉴 틈이 없었다. 돈을 쓸 틈도 없었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잘 팔리던 공예품의 판매가 시들해졌다. 이를 극복하려고 가짓수를 늘렸다. 주방용품이나 효자손, 안마봉 등을 추가로 생산했다. 만드는 과정이 다르니 필요한 기계를 주문 제작해야 했기에 투자도 늘려야 했다. 그렇다고 매출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일손만 늘어날 뿐이었다.

  담양을 담양스럽게 보이려 심혈 기울여
 
대나무는 단점이 있다. 곰팡이가 슬거나 좀이 먹는다. 유해균이 똬리를 틀기도 쉽다. 하지만 장점도 넘쳐난다. 대나무의 쓰임새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습도가 없다면 곰팡이나 유해균을 걱정할 필요 없이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다. 젓가락이나 숟가락 등, 바구니, 돗자리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가구, 모자, 액세서리도 다양하게 만들고 실내 인테리어에도 쓰이며 조형물도 대나무로 만들 수 있다.

▲2019전국대나무공예대전 최우수상 수상작
▲2019전국대나무공예대전 최우수상 수상작

“대나무를 생활에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대나무의 다용도에 관심을 가졌다. 공예품을 만드느라 들여놓은 여러 가지 기계가 있으니 응용하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 듯했다. 틈틈이 가구나 조형물을 만들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나아가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정성들여 만들었으니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띠, 기차, 자동차 등을 출품해 수상했다. 2006, 2008, 2010년에 전국대나무경진대회에서 입선한 그는 후로도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제14회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2011년에는 아산시 전통공예품 및 관광기념품전에서 특선을, 제31회 전국대나무공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로 눈을 돌렸다. 대나무를 엮는 그의 기술에 유럽 디자인을 접목했다. 그 결과 ‘나만의 휴식’이라는 장식 테이블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8년이었다.

그의 실력은 갈수록 입소문을 탔고, 제품의뢰도 늘었다. 하루는 모 공공기관 직원이 그를 찾아왔다. 그가 가져온 총과 모자가 그려진 설계도를 보이며 대나무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주문한 대로 만들지 않고 그의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모자에 대위 계급장을 부착했다. 계급장 때문에 밋밋함이 사라지고 꽤 근사한 모자가 만들어졌다. 관계자는 너무나 흡족해 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관공서에서 의뢰가 또 들어왔다. 간단한 인테리어를 부탁했다. 실내 기둥을 대나무로 엮어 가리는 것이었는데, 그는 또 자신의 아이디어를 첨가했다. 밋밋함을 없애려고 무늬를 넣어 격조를 높였다. 이를 보고 군수님도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그는 실력을 인정 받아 여러 공공건물의 실내 인테리어를 일부 담담했다. 공원 등에 설치된 대나무 의자나 소파는 물론 조형물도 그의 손이 갔다. 기후변화체험관,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홍보관 등에 그의 손길이 더해졌고, 대나무전시판매장의 메뚜기 건축물은 디자인등록까지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가 무엇보다 고민하는 게 있다.
“어떻게 하면 담양을 담양스럽게 보일지, 무엇보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대나무박람회장 쉼터 인테리어 작품
▲대나무박람회장 쉼터 인테리어 작품

  “대나무공예는 친구와 같아...”

그는 대나무와 보낸 시간이 35년쯤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나무를 끼고 살았다. 때로는 포기하고도 싶었고, 때로는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다보니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 짙은 회의감이 들었다가도 대나무를 보면 반가웠고, 돈을 못 벌고 고생만 죽도록 했는데도 미워할 수 가 없었다.
“대나무공예는 친구 같습니다. 깨복쟁이 친구요. 깨복쟁이는 언제 봐도 반갑잖습니까? 손익을 따지지 않잖습니까? 볼 때마다 반갑잖아요? 대나무공예가 그렇습니다. 그저 좋을 뿐입니다.”
그가 마음 편히 대나무공예를 친구처럼 여기는 것은 가족 때문이다. 대나무 부채의 맥을 이으려고 전수교육을 받고 있는 동생은 틈틈이 찾아와 일손을 보탠다. 공장에 3명의 직원이 있지만 동생의 손길은 큰 도움이 되곤 했다. 동생에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의 아내 역시 감사함을 전해야 하는 존재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암울할 때도 군소리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했다. 그가 의기소침해 있으면 솜씨가 좋으니 언젠가는 빛을 볼 거라고 따뜻하게 격려했다. 아내 말대로 빛을 보게 되자 자녀를 돌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아내가 대신했다. 피리를 전공 중인 딸과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아들. 자녀들은 그가 자신들보다 대나무공예에 더 공을 들인다는 것을 이해해 줄 것이다. 가족이니까.

그는 가족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 신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신뢰 쌓으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건강이나, 바쁘다는 핑계로 의뢰품을 대충 만들수는 없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는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신뢰는 앃기도 힘들지만,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합니다. 꼭 신뢰 때문이 아니고, 그게 기본이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그가 만든 공예품을 년중 전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여 건물을 지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 임대해주었다. 언젠가는 그 공간에 그의 작품들이 가득할 것이다. 서로 뽐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할 것이다. 대나무로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관람객들 사이에 탄성이 연이어 터질 것이다. 담양을 담양스럽게....
어떻게 해야 관람객들에게 그런 느낌이 들게 할지 그의 머리는 쉴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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