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광주매일신문 상무이사·경영학 박사
이경수 광주매일신문 상무이사·경영학 박사

다리 하나가 전남의 관광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개통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몰려드는 관광객과 차량들로 섬 전체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주말엔 아예 교통체증을 각오해야 하고 평일에도 지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다리 덕분에 신안군의 네 개 섬인 암태·자은·팔금·안좌도가 요즘 전남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로 떠올랐다. 주연은 천사대교.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한 7.2km의 해상교량(총연장 10.8㎞)이 그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몰려드는 관광객과 차량들을 수치로 확인하면 더욱 실감난다. 신안군이 개통 첫 날인 4월4일부터 30일까지 집계한 통행차량은 자그마치 30만5천713대, 하루 평균 1만1천322대에 달했다. 5월 첫 연휴 마지막 날인 6일엔 하루 1만8천812대로 늘어나면서 최고치를 갱신했다. ‘인산인해’는 물론이고 ‘차산차해’를 이뤘다.

지역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살펴보면 천사대교는 지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국내 4번째로 긴 다리이기에 일단 호기심을 자아낸다. 웅장한 규모에다 승용차로 다리를 지나면서 다도해 풍광을 즐길 수 있기에 관광객을 한번쯤을 다녀가게 한다. 게다가 육지의 관광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신비감을 갖고 섬 4개를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다. 개통하자마자 전남 서부권의 관광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찾아가면 아쉽기만 하다. 필자는 그 새 두차례에 걸쳐 천사대교를 건너 4개 섬 곳곳을 둘러봤다. 20여년 전부터 뱃길로 이미 서너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개통하자마자 워낙 반가운 마음에 승용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관광버스를 이용해 봤다. 결론은 관광객을 맞이할 채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먼저 4개의 섬 안의 도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오가는 길에서 대형관광차량들이 서로 마주치면 운전기사들은 비켜가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최고의 관광명소로 각광받는 안좌도 퍼플교 인근은 몰려든 차량들로 뒤엉키기 일쑤다. 천사대교가 착공부터 개통까지 수 년이 걸렸는데도 정작 섬 안에서는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자치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이제야 도로개설을 요구하고 가변차선을 거론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여기에다 숙박시설이나 대형식당도 손님맞이 채비가 갖춰지지 않았다. 관광버스 한 대만 들어가도 이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 마땅찮다. 결국은 관광객들이 현지에 돈을 쏟을 일이 없게 된 것이다. 대신 쓰레기만 남기고 다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즐길거리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 천사대교 개통에 앞서 새롭게 만들어진 관광자원이라면 요즘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에로스서각박물관이 유일한 시설이다.

이들 4개의 섬은 각각 독특하고 매력적인 특색과 자랑거리가 있다. 각 섬의 특징을 살려 스토리텔링을 제대로만 한다면 꾸준히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암태도는 1920년대 소작인 항쟁으로 유명한 항일의 땅이다. 일제강점기 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다.

자은도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00년 이상 된 수많은 노송이 바다를 감싸듯이 자리 잡은 두개의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분계해수욕장 해송 숲에는 여인 몸매를 꼭 닮은 형상을 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팔금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 등 불교유적이 남아 있지만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아 관광객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코스가 되고 있다.

신안이 낳은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화가 김환기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는 육지를 그리워 하는 섬 할머니 소망을 실현한 ‘천사의 다리’가 최고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왕복 3㎞ 남짓, 바다 위를 걸어서 섬 속의 섬을 여행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4개의 섬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당일치기로는 어림이 없다. 그런데도 섬에서 먹고 자는 관광객은 거의 없고 빠져 나가려는 차량들로 길만 꽉 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여하튼 천사의 섬, 신안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천사대교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거품이 아닌 전남 섬 관광의 성공사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자체는 인프라 확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주민들은 관광마인드를 앞세운 ‘친절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다시 보고 싶고,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명소가 되느냐, 아니면 ‘한번쯤’으로 끝나는 관광지로 전락하느냐는 오로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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