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5)
기획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5)
  • 장광호
  • 승인 2019.04.03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국악기 제작 허무 명인(담양군 공예명인)
전공을 버리며 선택한 전통악기 장인의 길
최고의 국악기 만드는 ‘문화재’ 지정이 희망
▲허무 명인
▲허무 명인

허무 명인은 전통악기 가야금, 거문고를 만드는 우리 지역 유일한 악기장인이다.
여동생의 권유로 우연히 배운 전통악기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전생에 국악기와 인연이 있었던 듯 열정과 노력 속에 심혈을 기울여 익히고 배운 악기공의 길은 마침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가야금, 거문고에서 좋은 소리와 음을 내는 천상의 악기로 탄생했다. 담양군 공예명인으로 지정된 그의 꿈은 이제 전라남도 문화재, 나아가 국가지정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소리

모진 풍파와 고난을 겪은 나무는 단단하다.
온실 속의 화초와는 달리 땅이 척박하고, 혹독한 겨울을 지난 나무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그런 단단한 오동나무로 사용해야 깊은 울림을 준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고 모두 악기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료로 쓰이려면 직경이 최소 30센티는 넘어야 한다. 그런 나무를 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재료 구하기도 어렵고,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다 보니 국악기를 찾는 이가 별로 없다. 그런 탓에 국악기를 만든 이들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명인이 있다. 담양에 터를 잡은 범음국악사 허무 대표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구례에서 태어난 허무 명인은 여동생의 권유로 우리 전통악기를 배우게 되었는데 악기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여 전공했던 전기분야 일을 포기하고 악기 만들기에 매달렸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접해본 적도 없었는데, 악기를 만드는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거문고의 틀 오동나무 원판 작업
*거문고의 틀 오동나무 원판 작업

전통악기를 평생 업으로 삼고 싶어 담양에다 악기사를 차렸다.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허무 음악사’ 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의 반대가 심해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연동사 스님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범음국악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스님이 지어준 범음에는 부처님의 소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던 어느 날 모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하신 석좌교수가 방문해, 이름의 뜻을 물었다. 아는 대로 말했더니, 이름은 정말 좋은데 해석을 달리해야 한다고 했다. 교수는 무릇 범자를 써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소리라고 추천했다. 그 후 범음국악사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나무를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집니다.

범음국악사에서 만드는 악기를 받으려면 긴긴 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주문이 밀린다. 범음국악사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여느 장인들처럼 혼을 불살랐기 때문이다. 그의 장인 정신은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재료인 오동나무를 구하기 위해 나름의 인맥을 구축했다. 산일을 하신 분들, 굴삭기 업자와 기사 등 척박한 땅에서 일하는 분들과 수시로 만나곤 했다. 누구보다 그들이 산에서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를 접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섬사람에게까지 굵은 오동나무가 눈에 띄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곤 했다.
“한번은 어떤 섬에서 어른 두 명이 안아야 될 정도의 아름드리 오동나무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섬에서 자랐고 아름드리 나무라니 얼마나 기대가 컸겠습니까? 부푼 가슴으로 달려갔는데, 직경이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겁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섬에서 산다는 또 한 분이 제보를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쭉 보아왔으니 족히 60년은 넘었을 거라고 했다. 제보자의 나이가 70이 넘었고, 아주 어렸을 때 집에서 심었다고 하기에 역시나 기대를 안고 달려갔다. 하지만 나무를 보자마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제보자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벽오동나무였다.

그가 그렇게 척박한 땅이나 음지 그리고 석산에서 자란 오동나무, 다시 말해 나이테가 촘촘하여 단단한 나무에 목을 맨 건 우리 현악기의 특성 때문이다. 서양 악기는 줄에서 나는 소리라면 우리 현악기는 나무에서 소리가 난다. 원재료인 나무가 좋아야 좋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단단한 나무를 고르고 고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그런 나무가 흔했는데 지금은 여간 귀한 게 아니다. 그가 담양에 터를 잡은 것도, 도시보다 단단한 오동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좋은 재료를 구했다고 좋은 악기가 탄생하는 건 아니다. 그는 좋은 악기를 만들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유명한 악기, 좋다고 정평이 난 악기를 구입해 분해하여 장단점을 파악했다. 폐기해야 할 만한 악기를 가져와 수리를 요청하면 새 악기로 교체해주고 분해해 보았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모두 좋은 악기가 되지 않는다. 나무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야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다. 오동나무의 속성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오랜 연구와 경험으로 손으로 대패질을 해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기계로 대패질을 하면 일이야 쉽겠지요. 그런데 오동나무가 무르기 때문에 으깨지면서 대패질이 됩니다. 속을 어떻게 파내느냐에 따라 소리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그렇게 으깨진 나무에서 좋은 소리가 날 리 없겠지요.”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승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게 스승은 연주자들이다. 그는 연주자들의 조언을 금쪽 같이 여기고 반영한다. 그를 아끼는 연주자들은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연주자들의 쓴 소리는 그 어떤 스승보다 훌륭하다. 가야금 연주자로 활약 중인 송화자 님은 줄에 대해 자주 조언해주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제품 생산에 귀한 참고가 된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한 나무에서 10개의 악기를 만들어도 소리가 각각 다르고, 같은 악기를 듣고 난 후의 평가도 각각 다르다. 정답이 없으니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객관적으로 평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게 그는 2004년도부터 진정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제29회 전국공예대전에서 입선하더니, 2005년에는 가야금으로 중소기업청에서 공예품 품질인증마크를 획득했다. 2012년에 제5회 대한민국황실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2013년에는 제8회 문화예술축제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담양군 공예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제37회 전국대나무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고, 제7회 대한민국황실공예대전에서 대한민국 황실명장을 인증 받았다.

악기가 좋다는 평가와 문화재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는 오래 쓸 수 있는 악기를 추구한다. 서양 악기는 수백 년이 지나면 명품이 되어 수억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전통악기의 수명은 그보다 턱없이 짧은 편이다. 전통악기는 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습기에 취약하다. 보관을 잘못하면 언제 성질이 변할지 모르고 시간이 흐르면 오동나무의 조직이 깨지거나 뒤틀릴 수 있다. 그걸 잘 알기에 그는 좀 무겁더라도 두툼하게 나무를 사용한다. 그래서 얇은 나무보다 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범음국악사를 설립한 초기에는 악기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함을 들고 다니며 숱하게 뿌렸지만 주머니에 들어간 명함을 보고 주문한 이가 없었다. 방법을 달리했다. 악기에 연락처를 새겨 학원에 샘플로 제공했다. 그럼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이 중요하듯 악기도 첫인상이 중요한데, 처음 들었을 때 소리가 좋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하나 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색이 좋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학생들에게만 좋다는 평이 난 것은 아니었다. 제자들의 악기를 본 스승이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도 그를 찾기 시작했다. 전주의 박애숙 님이나 부산의 김현주, 남원의 송화자 명창 등이 그의 단골이 되었다. 그의 악기가 탁월해서겠지만 유명세를 탄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담양의 상징이 된 대나무에 인두로 십장생을 그려 악기에 장식을 했는데 그게 독특해 보였는지 전주대사습놀이 때 카메라가 장식을 클로즈업하여 담았다. 다른 참가자들이 등장하면 인물을 클로즈업할 뿐이었는데, 그가 만든 악기를 클로즈업 한 것이다. 그 후로 이를 따라한 제작자가 있어서 부랴부랴 특허청에 등록했다. 아직 실용화되진 않았지만 가야금 현조율기도 특허 등록을 했고, 악기 받침대도 특허 출원 중이다. 그의 제품은 조달청에도 납품되고 2009년에는 조달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달청에 납품한다니까 후배가 영업 노하우를 묻더군요. 3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남의 제품 헐뜯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의 지론처럼 그는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하면 보관 잘못을 탓하거나 변명하지 않으며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교체해주거나 수리해 준다.
그는 요즘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가의 보급품이라고 만들었는데 시간이 흘러 엄청난 악기가 되기도 하고,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악기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할 때도 있다. 나무 특성 때문인데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무의 성질을 알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러니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연구해도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아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도 악기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를 거들고 있다. 재미있다고 아들이 뛰어들었지만 아버지로서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들에게 두 가지를 물려주고 싶다. 첫째는 범음국악사에서 만든 악기라면 무조건 좋다는 평가를 대를 이어서 듣는 것이다. 둘째는 문화재가 되어 아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한다. 그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우고 오늘도 오래된 오동나무를 들여다본다. 오래된 나무의 속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모진 풍파를 거친 나무처럼 그의 손끝도 단단하다. 오동나무가 오래 묵을수록 좋은 소리를 내듯,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단단한 손끝에서 좋은 악기가 탄생할 것이다. / 강성오 전문기자

*허무 명인이 만든 거문고
*허무 명인이 만든 거문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