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무예진흥법 관련 유일하게 전승종목으로 인정되고 있는 전통무예 수박 연재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무예진흥법 관련 1종목, 1단체로 유일하게 전승종목으로 인정되고 있는 전통무예 수박에 대한 연재입니다.

전승계보 및 잔존문화(민속무용, 농악 등)에 남아 있는것과 기술적으로 평안도 박치기, 함경도 뭉구리, 속쇄(중국 조선족들이 하던 씨름유사 체기), 날파람 등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무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근대 말 동아일보에 활자화된 ‘날파람’과 함경도의 뭉구리 등에 대해 궁구해 보고자 한다. 아래는 시라소니 이성순 선생의 사망기사이다.

이성순 선생의 아들인 이의현 씨는 부친의 키가 175cm이고 체중이 75kg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에는 77kg으로 되어 있다. (몸무게가 한창때는 90kg 정도 나갔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당시 조선 사람들 평균키는 160cm, 체중은 50kg 정도였으니, 타고난 체격조건 또한 좋았던 것 같다.) 1916년 평안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전주 이(李)씨로 말년에 기독교에 귀의하여 성복교회 집사로 사회활동을 마쳤다. 부인 이진옥 여사와 1남 5녀의 자제가 있다.

알려진 바로는 스무 살 무렵, 이북 최고의 주먹 박두성과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 최초의 싸움이었다. 이때의 결정타가 ‘박치기’였다고 한다. 방에 앉아 있다가도 벌떡 뛰어 마루에 있는 사람을 받아 쓰러뜨렸다니 가히 신기가 아닐 수 없다. 박두성 또한 힘이 엄청나게 장사였고 마찬가지로 박치기를 주특기로 사용했다는데 박두성의 박치기위력은 말(馬)을 넘어뜨릴 정도였다. 

함경도가 고향인 스승도 어릴 적 조선 사람이 일본 순사와 러시아인을 향해 박치기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박치기왕 김일 선생님의 증언. 실제로 역도산은 시합에서 박치기를 쓰곤 했다) 

생전의 역도산(1924년, 함경남도 위), 필자가 수년 전에 찍은 압록강 너머의 평안도이다(아래) 평안도와 함경도는 이 강에 인접한다. 박치기는 평안도 날파람의 주된 기술로서 우리민족 특유의 몸쓰기이다. 수박에도 박치기가 있다.(조선의 민속놀이, 1964 홍기무) 

‘망나니’ 십수명 평양서에서 검거

1935년 7월 22일자 동아일보를 보자. [평양]지난 17일 평양서에서는 부내 창전리에서 주소부정의 현기한, 이오 외 십이명을 검거하야 엄중취조중이라는데 그들은 약 일주일전부터 기림리(산림리) 신궁앞 부근에서 부랑배 백수십여명을 모아노코 "날파람이"(망나니 짓이란 의미)를 연습하며 기림리로 통하는 전차를 수차에 긍하야 정지시킬뿐 아니라 때로는 기림리 혹은 창전리 를 습격하야 그곳 부랑배들과 일대격투를 하는 등 동민들에게 매우 불안하게 한다.

조폭들은 저리가라다. 거의 서부활극수준이지 않은가? 건장한 사내들 백 여명을 모아놓고 싸움연습에 전차운행을 막는 것도 모자라 실전투입이라. 그 자체가 장관이었을게다(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는 말자) 그러고 보면, 일제강점기 우리무술을 금지했다? 라는 말들은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송창렬 옹의 스승인 천일룡 선생이 개성에서 일본군경을 두들겨 패고 도망다녔다하고 택견 기능자였던 고 김영식 옹도 젊은 시절 말을 타고가던 일본경찰을 발로 차 버린 적이 있다하니 신문물에 정신을 뺏기고 먹고살기 어려워 안 했던거지 못했던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분단되지 않았다면 날파람도 이어졌으리라. 다행히 1960년 초, 북한의 계정희 교수에 의해 개성에서 발굴된 것이 있다. 논문에서 택견 기능자 발굴이라는 말을 하는데, 북한학계에서는 날파람도 택견으로 보기에 그런 것이다. 이때의 택견은 일반명사로서의 용례이다.

함경도 뭉구리를 아시나요?

1930년 2월 26일자(동아일보)에는 ‘내 몸, 내 운동’으로 튼튼히 하자라며 ‘우리경기 몇 가지’를 소개했다. “지금까지에 제일로 널뛰기, 제이로 씨름, 제삼으로 장치기, 제사로 건네뛰기, 제오로 줄다리기를 전후 십 회에 분하야 술하얏거니와 그밖에도 평양에 날파람이며 서울의 택견과 함경도에 뭉구리가 잇고...

날파람은 경기로 활용되었었다. 물론, 불량배들이 익혀 이웃동내의 건달패들과 격투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한 도수무술이기도 했고 수박과 유사한 동작이 더러 있는 것도 흥미를 끈다.

어쨌던 위의 기사에 나오는 현기한, 이오등은 고당 선생님과 함께 근대날파람의 기능자들로 알고 있어도 무방하다. 시라소니 이성순, 역도산(김신락)선생도 마찬가지인 것이다.(단순히 기예자체에 국한해서 하는 얘기이므로 주먹이니 스포츠선수니 등의 구별은 말았으면 좋겠다)

수박의 기능자로는 1800년대 김달순, 1900년대 천일룡, 민완식 옹 등이 계셨다. 날파람은 분단 이후 맥이 끊어졌고 수박은 미약하나마 현대로 이어져 전승되고 있다.

명성황후 조카이신 중산 민완식 선생(해방 후 개성 선죽교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우측의 분이시다. 당시 유도 7단(일본 강도관) 민완식 선생을 사사하신 오진환 할아버지(1919 ~ 2002년 졸) 

날파람이나 뭉구리(뭉갠다... 속어로 공군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등은 체육적인 투기의 지역적 모습으로 전해져 오던 것들이다. 뭉구리는 바싹 깍은 머리나 '중'을 조롱조로 가리키는 함경도 방언이다. 

기사에 경기의 일종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아 뭉그대다(제 자리에서 몸을 비비대다) 또는 뭉싯거리다(나아가는 시늉으로 제자리에서 자꾸 비비대며 움직이다)의 명사형일 것이다. 뭉구리? 들어본적이나 있으신가. 여러분과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본 저자는 '수박 전통무예' 내용도 기사로 추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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