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여장부 서 지 수

▲서지수씨
▲서지수씨

“남편이 권장했어요.”

서지수. 그녀는 귀농 전 서울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살았다. 공직자인 남편 때문이었다. 여러 단체에 가입하여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며 생활했다. 때로는 노인들을 찾아 뵙고, 때로는 식판에 배식하고, 때로는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여느 주부처럼 1남 1녀의 어머니로, 아내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향수 때문이었다.

그녀는 수북에서 태어나 수북 중학교에 다녔다. 서울에서 살면서 자주 고향을 그리워했다. 어느 시인은 고향은 멀리 있을수록 선명하다고 했는데, 그녀도 고향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다. 고향에서의 삶과 흙냄새가 그리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갔다.

자녀들이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자 더욱 고향의 흙냄새와 정경과 사람이 그리웠다. 마음이야 당장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남편이 걸렸다. 남편이 아직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내 된 도리겠지만 그녀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이 흔쾌히 찬성했어요. 오히려 더 귀농을 권장했습니다.”

남편이 정년퇴직 후를 생각해 아내가 미리 귀농해서 기반을 닦아 놓는 것도 좋다고 했다. 남편도 은근히 퇴직 후를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남편이 퇴직 후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아내가 귀농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었다.
“잡초 뽑는 게 힘들었죠.”

그녀는 고향인 수북으로 혼자서 귀농했다. 귀농했으니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지 알아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가 귀농했을 때 마침 수북 농협에서 블루베리를 장려하고 있었다. 블루베리가 그녀에게 맞을 것 같았다.
그녀가 블루베리에 관심을 기울인 건 초기 투자비 때문이었다. 이왕 귀농했으니 돈을 잘 벌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라도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는 안정적인 정착에 더 비중을 두었다. 돈을 번답시고 시설 투자를 위해 박대한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딸기나 상추 등 과채류를 재배하려 해도 비닐하우스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경험도 없는데 작지 않은 비용까지 투자한다는 것이 모험 같았다. 더군다나 혼자 관리하고 수확해야 하는 그녀는 감당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 농사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에 투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녀는 노지재배 가능한 작목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었다.

그녀는 2,000평을 임대해 블루베리를 심었다. 뿌듯했다. 틈틈이 밭에 나가 블루베리를 돌보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흙냄새가 좋아 귀농했지만 농사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잡초를 뽑는 게 힘들었다. 더위를 피해 새벽에 나가 잡초를 뽑고, 해가 질 무렵 밭에 나가 잡초를 뽑곤 했다. 혼자서 잡초를 뽑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뒤돌아서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뽑아도, 뽑아도 잡초는 무성했다. 정말 질긴 생명력이었다. 그놈의 지겨운 잡초 때문에 괜히 귀농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역귀농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귀농했고, 남편도 퇴직 후 귀농할 것이니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놓아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주말이면 남편이 내려와 일손을 거들어 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은 피곤한 몸으로 상경하면서도 흡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녀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남편이 보탠 것이었다.

그녀는 블루베리를 더욱 깊이 알고 싶어 마이스터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블루베리를 배우는 자체가 즐거웠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자신감도 붙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학우들과 이웃에게 배운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응용했다. 그녀는 그렇게 점점 농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숙소는 농장 옆에 있다.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진 곳이다. 주민들과 왕래가 드물 수밖에 없는 곳에 기거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주민들과 왕래가 잦다. 그녀는 틈만 나면 마을로 찾아가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챙긴다.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적극 돕기도 한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먹을 게 생기면 저에게 갖다 주곤 합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훨씬 가깝게 지내고 있다니까요. 멀리 있는 사촌보다 이웃이 낫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담양군 귀농·귀촌 홍보행사에 참가
▲담양군 귀농·귀촌 홍보행사에 참가

그녀는 활달하다. 그리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녀는 귀농귀촌협의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담양에서 열리는 대나무박람회에도 참여하여 귀농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귀농귀촌박람회도 참여하여 담양 홍보에 앞장선다. 그녀는 마치 담양의 홍보대사처럼 홍보에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런 성격 때문에 다른 시군의 농업기술센터 직원이나 귀농귀촌협의회 분들과도 교류한다. 짧은 귀농에 비해 다양한 인맥을 구축한 것이었다.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은 그녀가 생산한 블루베리를 판매할 때도 드러난다. 박람회장을 찾는 관람객, 식사하러 들어간 식당 주인, 숙소 사장, 주유소 직원, 마트 사장 등 그녀는 만나는 누구에게도 명함을 건네며 블루베리가 필요하면 주문하라 한다.
그런 적극적인 성격 탓에 그녀가 재배한 블루베리는 공판장에 나가는 것보다 많다. 개인 판매다 보니 공판장에서 파는 것보다 가격을 더 받는 건 당연하다.

“웃고 또 웃고.”

그녀는 수확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농부가 수확 철에 보람을 느끼지 못할 리 없겠지만, 그녀는 다른 이유로 재미를 느낀 것이었다.
“블루베리를 딸 때는 많은 일손이 필요하잖아요?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여자들이 야한 농담도 서슴없이 하고, 세밀한 가정사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그런 이야기들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하시는지 힘든 줄도 모르고 웃고 또 웃습니다.”
물론 풍성한 수확 때문에 웃기도 했다. 그녀는 올해 4,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자 혼자 소득치곤 제법 짭짤한 금액이었다. 그러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녀는 혼자 일군 블루베리가 안겨준 소득과 정겨운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에 웃고 위로를 받는다.
그녀는 수확이 끝났지만 아직도 5시 반에 기상하여 잡초를 제거하고 물 관리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날이 더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귀농하고 5시 반 기상이 몸에 배었다.

“블루베리는 나의 비상금.”

그녀는 귀농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마음대로 돈을 쓰는 것이다. 서울 생활도 경제적으로 쪼들리진 않았지만, 블루베리가 안겨준 소득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더군다나 그녀가 귀농한 것은 남편의 정년퇴직을 대비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목적이었기에 블루베리로 얻은 소득은 어디에 써도 부담이 없었다.
“살 것 사고, 할 것 하고, 애들 용돈도 마음대로 주고. 그래서 블루베리는 저의 비상금 창고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녀는 돈을 이렇게 마음 편히 써본 적이 드물었다. 봉사활동을 하며 들어간 돈도 꽤 되지만 불만은 없었다. 또한 만족도가 그렇게 높지도 않았다. 자기 돈 쓰고, 봉사까지 하고 왔는데도 집에 돌아오면 허전한 마음이 조금은 남았다.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한 봉사활동인데 은연중 경제적 부담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돈을 쓰든 홀가분하다. 남편의 퇴직을 대비해 점점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통에도 관심.”

블루베리는 그녀에게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가져다주었다. 마음의 여유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는 시설에 투자하더라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을 안겨준 것이었다. 노지에서 잡초와 싸웠던 일에 진절머리가 난 그녀는 잡초와의 전쟁을 수월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저절로 생각난 것이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비닐하우스였다. 비닐하우스라면 노지보다 잡초 뽑는 일이 훨씬 편할 듯했다. 하지만 남의 땅에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소유의 땅을 확보하려고 귀농창업자금을 신청할 예정이다. 귀농창업자금으로 어디에 땅을 사고 어떤 시설을 갖출지 알아보려고 열심히 발품을 팔고 다닌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유통을 해보고 싶어요.”

그녀가 생산한 블루베리와 이웃이 생산한 질 좋은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유통업에 도전해보고 싶다. 담양의 특산품인 딸기, 멜론, 백향과, 애플수박, 아로니아, 죽순 등을 공판장이나 마트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공급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생산한 블루베리를 매개로 점차 소비층을 다양화하고 나서 도전할 생각이다. 그날을 앞당기려고 부지런을 떨다보니 몸매도 날씬해졌다. 돈도 벌고, 살도 빠지고. 그녀가 활짝 웃을 수밖에. 
(귀농인 서지수 연락처 : 010-4794-1775)/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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