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 개봉
파란만장한 개인사 촘촘히 훑어
빛나는 성공, 어두운 과정 대비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보디가드’, 이 영화에서 직접 부른 노래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와 함께 휘트니 휴스턴의 인기는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웬 다이아~’로 들리기도 하는 이 노래의 ‘앤드 아이(And I)~’ 하는 절창 부분은 한국 길거리에서도 지겨울만큼 흘러나왔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그 인기는 지구 저편 독재자의 선거운동에서까지 번역곡이 불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23일 개봉하는 ‘휘트니’는 눈부신 재능, 그에 걸맞는 명성을 누린 가수 휘트니 휴스턴(1963~2012)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여기에 담긴 성장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재능을 타고난데다, 이를 꽃피울 환경도 충분했던 경우 같다. 엄마 씨씨 휴스턴 역시 유명 가수들 코러스를 거쳐 솔로 음반을 냈던 가수. 이들 가족은 일가친척이 모이면 온종일 가스펠을 듣거나 함께 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귀염둥이로 자란 딸은 준비된 데뷔를 통해 원조 디바로 거듭났다.

여성이 솔로 가수로 톱스타 반열에 오르는 게 흔하지 않았던 시절, 그는 줄줄이 차트를 석권하며 디바의 성공사를 쌓아갔다. 피부색이 밝은 편인데다, 백인 취향의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정체성은 가족들이 불러온 애칭 ‘니피’ (‘휘트니’란 이름은 TV 드라마의 백인 여주인공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대로였다. 특히 수퍼볼 무대에서 그만의 창법으로 미국 국가를 부른 순간은 인종·성별·연령을 넘어 미국 전체를 매료시켰다.

그런 디바가 왜 49세에 호텔 욕조에서 죽음을 맞게 됐을까. 이 다큐는 음악적 성공과 더불어 비극적 죽음에 이른 인생을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이들을 인터뷰하고, 무대 뒤편이나 집에서 사적인 분위기로 찍은 영상 등을 풍부하게 곁들였다.

이를 통해 10대 시절부터 오빠들과 함께 마약을 했다거나, 점차 가족 전체의 현금지급기 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거나, 사업의 주도권을 두고 가족 안팎에서 갈등을 겪었다거나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동성연인으로도 추정됐던 친구와의 결별, 동료 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어린 딸을 늘 투어에 데리고 다니면서도 엄마 노릇이 쉽지 않았던 면면도 다뤄진다.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이 다큐가 첫 공개될 때 충격을 안겨줬던 대로, 어린 시절 친척 여성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지인의 전언도 등장한다. 돌이켜 보면, 가족관계와 결혼생활의 갈등이 증폭된 순간이 ‘보디가드’의 큰 성공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본격적인 음악 다큐가 아닌데도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아이 해브 낫싱’ 같은 여러 히트곡과 더불어 탁월한 가창력이 전해져온다. 그 중에도 뭉클한 순간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직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무대에서 부르는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시간이 흐르고 꼭같은 노래를 다른 무대에서 부르는 장면은 감동 대신 처절한 슬픔을 불러낸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목소리, 형편없는 노래 솜씨는 이후 디바의 비극적 죽음과 더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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