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정신은 “평등 민족 자조” 강조,-“동학농민혁명기념관 조성사업 미래지향적으로 해달라” 당부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김진성 기자회원 ]정의화 국회의장이 전북을 방문한 목적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다. 어렸을 때 느꼈던 잘못된 역사인식에 벗어나 새롭게 동학농민혁명이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9일 전봉준장군이 붙잡혔던 ‘피체지’로부터 문화 탐방이 시작됐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중흥기 였던 정조시대를 거치면서 1894년까지 100여년 동안 농민의 삶은 고난의 연속과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세도정치로 인한 수탈은 심해지고 농민들은 점점 토지를 잃어갔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과 내정간섭은 더해져가고 조선의 경제와 민생은 파탄에 이르렀는데 권력층은 총체적 난국을 수습하고 타결할 힘을 상실하고 만다.

정의화 의장은 동학농민혁명의 단초가 된 정읍 고부면 고부관아터로 이동한다.
고부관아는 1892년 조병갑군수가 부임한 이후 농민들의 학정은 극에 달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유성엽국회의원은 정의장에게 “고부읍성을 발굴하여 복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고부초등학교가 들어서 있어 관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고부초등학교 옆 향교와 수 백년된 은행나무, 향교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경사 높은 돌계단만이 당시 고부관아의 권위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어 동학혁명 기념관을 방문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방명록에 친필로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을 위하여 노력하겠읍니다”라고 휘호했다.

정의장은 “기념일 제정은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고부에서 봉기한 날이 제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혁명의 시작이 고부가 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 “민란 따로 혁명 따로 본다는 학계의 논란이 일고 있다”는 말에 이해 하기 힘들다며 “기념일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엽의원도 “민란은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사발통문의 내용을 보면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조병갑을 효수할 것’, ‘탐관오라를 쳐 징계할 것’등을 보면 논란의 대상이 아니고 고부에서 농민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사발통문은 고부농민봉기를 계획하고 뜻을 함께한 동지들의 이름을 써넣었는데, 사발 주위에 둥그렇게 배열해 넣어 주모자가 누군지 모르게 하고, 연대책임을 강조하는 통문이라 ‘사발통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정의장은 “10년 20년 지나면 이 세상 다 터나고 나면 흐지부지 될텐데 기념일을 3월5일로 정해놓고 사발통문 작성일 부터 역사적 사실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의장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조성사업비예산이 382억 들어가는 엄청난 사업인데 여러분들이 정말 돈 하나 하나 낭비하지 않도록 진실 되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사회 불신이 예산을 정확히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장은 “일반적으로 지금까지는 하드웨어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과시하는 것이 많았다”며, “그것을 해놓고 나면 문제는 유지관리비가 엄청나다. 그 돈은 다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온다”고 꼬집었다. 그런점을 감안해 학자들의 생각보다는 시민들의 생각을 더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정의장은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건물 만들어 과시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당부했다.

유성엽의원도 “전적 유물 관군의 토벌작전 기록이 전부다”며, “찾아오기 힘들고 볼게 별로 없고 이런상황에서 어떻게 만들것이냐 공원을 만드는 것은 가야하는데 400억 국민혈세낭비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느낄수 있도록 설계해 달라”고 강조했다.

정의장은 “지금은 시청각시대다. 보고 느끼게 하려면 거제도 포로수용소처럼 순간적으로 착시현상으로 인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조성사업도 그런 단계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접근성은 청소년들이 와서 보고 느끼고 할 방법은 전북도와 정부 16개 시도 교육청을 연계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가야한다”며, “젊은층인 20대와 30대의 의견수렴을 충분히 하여 이곳에 꼭 다녀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모 재단 사무처장은 “ 역사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연수동을 짓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며 최소한 1박2일정도 할 수있도록 하겠다”는 말에 정의장은 “1박2일을 하면 엄청난 시설예산이 드는데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돈을 받습니까?”라며 그것은 부당하다 말했다.

또 이어 “우리의 병폐는 정부의 의존도가 갈수록 많아진다. 사실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청소년들이 자고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보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에게 긍지를 심어주고 우리민족이 돈이나 권력에 쉽게 넘어가는 민족이 아니다.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여러분이 있는 것이고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 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의장은 “먼저 정부에 요구하기 전에 내가 조국을 위해 뭘 할 수 있나?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청취와 전 국민을 동참 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그것이 설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정의장은 “과거지향적인 시각을 버리고 젊은 사람들 시각에 맞는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탐방은 백산성으로 이동했다.
백산성은 해발 50m정도인 야산이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백산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산을 두고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을 한다. 그 당시 농민들은 흰옷을 입어서 서 있으면 산도 흰옷을 입고, 앉으면 죽창이 하늘을 찌를듯하여 죽산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농민들이 호남창의대장소가 설치되어 농민군의 수뇌부가 조직을 정비하고 창의문을 선포하고 결의한 유적지이다.


정의장은 마침 이곳을 찾은 구례중학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동학정신을 설명해주었다. “동학은 역사가 왜곡되면서 민중의 혁명이지 철이 들어가면서 알게 됐다. 그 당시는 대부분 농민이었다. 양반사회에서 새로운 개화체제로 바꿔지기를 열망한 혁명이 역사적으로 새롭게 재조명 되야한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끝으로 정의장은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강하고 아름다운 정신이 있었다. 그것은 평등 민족 자조였다. 젊은이들이 마음속으로 품고 자라면서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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