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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칼럼] 너무 일찍 패를 꺼내지 마라
이창호 | 승인 2017.12.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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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이 다 자라지도 않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 수 없듯, 비장의 카드를 너무 일찍 꺼내거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역경≫<건괘>에서 말하는 ‘잠룡재연(연못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용)’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조용히 덕을 쌓으며 자신의 능력을 펼칠 때를 기다리는 숨은 군자를 말한다.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시인인 조조(曹操)는 역시 몸을 바짝 낮추고 자신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조조가 처음 대업을 향한 뜻을 품었던 한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졌고 도처에서 군웅들이 할거했다. 개나 소나 천자가 되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혼돈의 시대에, 조조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견제와 방해를 모두 물리치고 한나라 왕실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기반을 모두 갖추었다.

조조는 죽기 전까지 황제의 관을 쓰지 않았다. 한나라에 대한 충정 때문이었을까? 이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이해한 조조의 치밀한 계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의 지혜와 지략, 판단, 신중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의 헌제가 동탁의 꼭두각시로 전락(轉落)하자, 한나라 왕실을 계승하겠다는 조조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에 따라 조조에 대한 주변의 경계와 견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주유는 조조를 가리켜 한나라를 훔치려는 ‘도둑놈’이라고 폄하했고, 유비는 조조를 겉으로는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외치지만 그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며, 황제의 보좌를 넘보는 사람이라고 은근슬쩍 내리깎았다.

적벽대전 이후에는 손권, 유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상당한 견제를 받았다. 마초를 위시한 관중 지역의 반역 세력들도 압박을 가해 왔다. 또한 안팎의 정적들은 조조가 ‘불손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그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했다.

조조는 이러한 음해의 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충정을 보여 주었다. 특히 건안 15년(210) 12월, 현을 봉지로 내려주는 것을 사양하는 뜻을 밝힌 <양현자명본지령>에서 조조는 왕실에 대한 충정이 변함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조가 올린 상소문은 뛰어난 문장과 수려한 표현으로 중국 고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조조는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건안 18년(213) 5월 조조가 위왕으로 임명되자, 세간에는 다시 그가 불손한 뜻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조는 <단가행>에서 주문황, 제환공, 진문공 등의 위인을 찬양하며 그들을 본받겠다고 했다. 비록 위왕에 임명되고 많은 재물을 하사받았지만, 자신은 여전히 한나라 왕실의 신하라고 했다.

문무백관들은 조조에게 글을 올려 헌제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천명이 자신에게 있다면, 주나라 문왕이면 충분하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뛰어난 재능과 지략, 용맹을 갖췄던 조조는 왜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았을까?

첫째, 손권이 조조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권한 것은 조조를 궁지에 몰기 위한 계략이었다. 만약 그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조조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정적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게다가 내분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로써 손권에 대한 견제가 사라짐으로써 오나라는 득의양양하게 촉나라를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둘째, 정적들에게 좋은 구실을 내주지 않겠다는 조조의 의지였다. 조조가 위공, 위왕에 오른 후 빈번하게 발생한 내분은 조조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조조는 한나라지지 세력을 달래기 위해 헌제라는 ‘마지막 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셋째, 실리주의자였던 조조는 황제라는 빈껍데기보다는 병권을 쥐고자 했다. 비록 ‘역적’이니 ‘도둑놈’이니 하는 욕을 먹긴 했지만, 조조는 결코 한나라 왕실의 신하라는 신분을 버린 적이 없다.

한편 조조는 삼국지의 영웅들 가운데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 (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후한을 멸망시킨 난세의 간웅(奸雄)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황제가 되기보다는 주무왕에게 대업의 기틀을 물려준 문왕처럼 기반을 닦아, 후손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기를 바랐다. 죽을 때까지 황제의 보위에 오르지 않고 속내를 감춘 조조는, 오랫동안 이해득실을 따지며 실리를 좇으면서도 민심을 얻기 위해 매우 고심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남다른 지혜와 계략, 참을성을 가진 조조의 위대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작금, 상대방에게 자만심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제압하는 최선의 공략이다.

이창호(李昌虎)라이프코치

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한국청소년봉사단연맹 부총재

저서<이순신 리더십>외 다수

이창호  leechangh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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