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인영화제 우수상 수상은 인생 제2막의 비타민이자 활력소였다.

▲ 필자.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신문식 기자회원 ]
나는 이번 9월 21일 날 <인생 제2막을 출발한다.>고 아들 딸 손자 17명, 형제 조카 21명. 총 38명이 모인 오찬에서 거창하게 발표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35년간은 금호구룹에서 생활을 했다. 금호구룹에서 우리 가족을 먹이고 가르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금호구룹에 항상 감사를 했고 근무 중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 했기에 인간 70이 넘도록 일하도록 일자리를 제공해준데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그 35년간은 나의 젊음도 바쳤지만 우리 자식들이 모두 바른 길을 걸어서 아버지의 지난 과거보다 훨씬 똑똑한 길을 찾은 것이 금호구룹의 덕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금호구룹에 감사를 드린다.

나는 인생 제2막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었다. 운전은 나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5년간 금호고속에서 고속버스와 금호타이어에서 통근버스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알로 있어서는 안된다.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결심하고 부인과 결정을 했다.

지난 2014년 4월 31일자로 금호구룹(케이지)을 사직을 하고 5월 8일부터 광주 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영상공부를 했다. 시민기자활동을 3년 전부터 시작했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는 동안에 사진 기사를 올리는 것보다 영상기사를 올리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호구룹에 근무하는 중에도 영상을 배우는데 필요한 대용량 컴퓨터와 동영상카메라를 준비를 했다. 영상만이 나의 인생 제2막을 즐겁게 해줄 건강의 밑거름이자 노년의 활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배우는 동영상은 낯 설은 나에게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의욕과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도브 프리미어 영상공부는 70객에는 매우 어려웠다.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들어가려면 자동문이 스르르 열린다. 나는 인생 제2막이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자동문처럼 열릴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어려웠다. 갈림길이 눈앞에 닥쳐왔다.

금당산과 풍암 호수공원은 나의 마음을 씻고 세탁하는 산책로선이다. 금당산 등산 길 입구 풍암정에서 풍암호수공원을 바라보면 답답한 마음이 툭 터진다. 저 깊은 물속도 훤히 보이는데 “어도비 프리미어”는 왜 그렇게 내용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금당산에서 하소연을 했다. 천지신명께 하소연을 했고, 금당산 산신께 하소연을 했으며, 우리 조상님께 영상을 배우는데 도와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영상을 처음 배우는 동안 금당산은 나의 하소연day 장소였다. 처음 배우는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그램이 얼마나 어렵고 답답했으면 그리했을까?.

배우기를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면서 봉사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가르침에 힘을 얻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박종익 감독과 윤병훼 선생의 적극적인 지도와 가르침에 지면을 통해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의 배우려는 도전과 열정, 두 분께서 적극적으로 지도해주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빠른 학습효과를 볼수가 있었다. 기획서를 제출했고 검토를 했으며 촬영을 했다. 우리 집 텃밭에서 촬영 했고 편집을 했으며 박종익 감독님의 지속적인 지도와 협조를 받아서 편집을 완료할 수가 있었다.

내 주변 여러분의 협조를 받는 동안에 촬영과 편집은 빠르게 배울 수가 있었다. 처음 작품은 노년의 부부가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알콩달콩 미운정도 다 소화하면서 황혼이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노부부의 일상을 담았다.

텃밭에서 촬영한 <티격태격 알콩달콩> 첫 작품은 제7회 서울 노인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을 해도 믿어지지 않는 첫 작품이 서울 노인영화제 본선진출이라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노인영화제 사무국에서 처음 온 전화가 “신문식 감독님 전화가 맞습니까?”하는 첫마디가 가슴이 울렁거렸고 내가 정말 감독 말을 들을 수가 있는가? 어안이 벙벙했다.

대망의 2014년 9월 27일은 결선이 있는 서울 노인영화제 폐막의 날이다. 기대는 안했지만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기다렸다. 많은 감독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심사평을 하시는 분의 말씀에서 희망은 없었다. 인기상에도 장려상에도 호명이 없었기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수상 호명은 꿈도 못 꾸었다.

그러나 아~ 어인 일인가? <티격태격 알콩달콩>신문식 호명되었다. 정신 없었다. 꿈만 같았다.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아~ 내가 진짜 감독이 되었구나. 더 큰 짐을 졌구나. 기쁨과 의무감의 혼돈이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를 몇 번 다짐을 하면서 크게 숨을 몰아쉬고 “모든 영광을 시청자미디어센터와 봉사단원 여러분과 함께해준 부인과 관객여러분들께 영광을 함께 하겠습니다. 서울 노인영화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나는 이제는 기획구성, 영상촬영. 편집하여 11월에 있을 에버그린 영화제 출품준비에 바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최선만이 내의 소속사 광주영상미디어클럽 영화제를 준비하는 여러분들께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라 생각한다.

다소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과 협조하면서 열심히 할 것이다. 영화제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모임체가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요, 조직의 혼연일체에 따라서 예술작품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도 알았다. 영화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면 나와 마주한 사람들이 가장 소중했고,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도와주고 사랑해주었으며, 현재 지금 이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소망이 있다면 홍익인간 적으로 영상기사를 많이 썼으면 하는 마음이고, 드라마를 홍익인간 적으로 기획 촬영해서 개인 이기주의 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민족보다는 세계인류평화공동체 국가를 위해서 전쟁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음을 용솟음치게 하는 작품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나의 드라마는 정의사회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국민이 되기를 소망하며 세계인류 평화를 위해서 항진하는 홍익인간 호 작품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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