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정덕구 기자회원 ]  월인천강
▲ 소설가 이보라
지워도 다시 차는 저 달 같은, 당신이 야속하여 서럽습니다. 심정을 문득 이렇게 서술하고 나니 마음에 달처럼 사람이 뜹니다. 비단 문학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고대(古代)부터 달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그것이 높이 돋아 멀리 비추시면 임의 귀갓길이 무탈할 것 같았고 그것이 서방정토까지 함께 하시면 사람의 왕생(往生)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달은, 사람의 애달픈 심정을 반영하는 서정의 거울이었다가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의 진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저 달을 가리키면 그것을 보아야 할진데, 다른 사람이 달 대신 손가락을 쳐다보고 달인 양 여기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씀이 ‘견지망월(見指忘月)’입니다.

본질을 살피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보기에 급급하다는 뜻입니다. 이럴 경우에 잃게 되는 것은 달 뿐 아닙니다. 그것으로 여겼던 손가락은 물론이요, 달빛의 밝음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까지 사라지게 됩니다.

달빛은 뜨겁지 않고 은은합니다. 그것은 절제의 온기와 침묵의 빛으로써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지켜왔습니다. 한국의 현실이 오로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투성이거나 말거나, 달의 여유와 여백이 오늘 밤하늘에도 충만합니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지만 추석 연휴에는 비 소식 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구름 사이로 한가위 보름달을 맞을 수 있습니다.” 크고 둥근 달을 오랜 동무처럼 챙겨온 추석 전후에, 우리들은 제 소원성취를 빌기 위해서라도 달을 찾습니다.

우선 칠흑 같은 밤하늘과 담담히 마주해야 합니다. 비로소 저 달을 간절히 응시하는 시간을 우리들은 갖게 됩니다. 지금 사람은 옛 달을 볼 수 없으나 지금 달은 옛 사람도 비추었으며, 나중 사람과 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달은 종종 영원한 피안(彼岸)을 계시합니다. 이때 달은 우리들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러나 슬픈 봄과 힘든 여름을 지낸 우리들은 이 가을에 저 달을 보며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꽃이 져도 봄은 다시 오듯 달이 기울어져도 가을은 다시 옵니다. 무엇보다 달빛은 어둠과 항시 공존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들 수시로 애달픈 삶처럼 말입니다.

[불교신문3042호/2014년9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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