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서 새로운 여행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정덕구 기자회원 ] 낡아서 새로운 여행

▲ 이보라 | 소설가
출가를 못하니 가출을 합니다. 여행은 그렇게 집과 일상을 벗어나며 시작됩니다. 왜 벗어나고 싶은 건지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휴가철마다 가방을 싸서 일단 나서고 봅니다. 그러나 집과 일상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반드시 돌아와야만 한다면 우리가 여행을 통해 찾아야 할 것 혹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같을 수 있습니다. 고단하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구한 석가모니 부처님 첫 말씀이 “인생은 고(苦)다”였을 겁니다. 이 고통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없애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우리의 여행은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다르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여행지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란 쉽지 않습니다. 휴가철마다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바가지요금에 울다가 불의의 사고까지 겹칠 경우, 휴식과 위로를 구하러 떠났던 길은 스트레스와 후회로 그야말로 지옥이 됩니다. 그 길을 헤매는 동안 온데간데없어진 ‘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되니, 애초 집과 일상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만 못할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나를 위해 진정한 여행이 하고 싶어 ‘템플스테이’를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전통사찰에 머물면서 예절과 다도 예불 등을 배우고 이웃과 자연을 만나며 그들과의 어우러짐을 경험했습니다. 흰 고무신에 맨발을 집어넣고 정갈한 사찰음식을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두고 온 사랑하는 대상들을 생각하며 무릎을 꿇었고, 진심을 담아 절도 올렸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낡아서 전혀 새로운 것들이 다 있는가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꼭 불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템플스테이에 나와 함께 머무는 것들은 전부 한국의 정신이며 문화였으니까요. 온데간데없어진 줄 알았던 내가 찻잔 속에서도 보이고 바람이 풍경을 흔들 때마다 내 지나온 날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니까 템플이라는 낡은 여행지에서 내 벗이 몇 인고 하니 무상무념(無想無念)한 자연과 수행자이신 스님, 또 그 무엇보다도 내일을 살아갈 나 자신이었습니다.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은 새로운 나였고, 얻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운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 이보다 더 내 삶이 소중하며 풍성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신문3031호/2014년8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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