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국가안위’만을 생각, - 국가발전에 헌신

[한국시민기자협회 뉴스포털1 김진성기자]장경순 전 국회의장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호는 단원(丹原), 하원(霞原)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 상해에서 8.15광복을 보고, 육사를 거쳐 6.25전쟁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제 3공화국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 김제 지역구에서 제 6대에서 10대 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1963년에서 1971년 까지 최장수 국회 부의장을 역임 했다.
1980년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켜 정계를 은퇴하고 이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자유수호운동본부 명예회장 등을 역임 하는 등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해 왔다.

▲의장님이 살아 오시면서 신념이 있을텐데 중요한 계기가 있습니까?

노산 이은상 선생과 만남이 있었다.
노산 선생과 만남에서 인생의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것은 노산 선생이 내 글씨를 보고 총칼이나 들고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글씨를 잘 쓰냐 말하면서 생각을 달리 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왕래를 해오던 중 소식이 끊겨, 수소문 끝에 알아보니 병원에 입원 했다는 말을 듣고 노산 선생을 찾았다.

병원에 가니 노산 선생이 자리에서 번뜩 일어나며 “나 죽기전에 당신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죽어야 겠다”며 “내말을 똑똑히 들어보라”고 했다.

한국이 단군이래 훌륭한 사람이 3인이 있는데 첫째는 세종대왕, 둘째는 이순신 장군, 셋째는 박정희다.

박정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쳐 업적을 세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 했지만 정치는 잘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는 백성들이 등따숩고 배부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다.

당시 조선은 250만 인구였다.  그것도 특수한 사람만 배불리 먹고 살았지 나머지 백성들은 의식주를 해결 하지 못했다.
혁명하고 1963년에 보리고개를 넘게 됐다. 이것은 세종대왕 보다 더 업적을 세운 것이 아니냐?

이순신 장군은 23번 일본군과 싸워 승리 했고 백의종군을 두 번씩이나 했다. 해군사관학교에 가면 이런 책이 있는데 이 책을 펴 보이며 영국이 스페인과 싸워서 승리한 인물이라고 추앙했다.

하지만 그 장군은 조선에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 같은 업적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국군 장수는 나라에서 준 무기로 싸워서 이겼지만, 이순신 장군은 직접 무기를 만들어 대승 했다. ‘일노전쟁’ 당시 영웅이었던 ‘도구회로’ 장군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했다.
1975년 북한의 김일성이가 남한과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노산 선생은 이제 내 이야기를 다 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 보니 어째서 그런 말씀을 나에게 했을까 생각했다.
그 어른 말씀에 어떻게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살 수 있을 까 생각하면서 실천 한 것이 일일삼성(一日三省)이었다.

▲의장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증자(曾子)가 이야기한 일일삼성을 인생의 좌우명을 설정 하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화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유도를 하고 있다. 유도는 일본의 ‘가노지구로’ 라는 선생이 유도란 이름을 명명했다. 유도가 신라시대에 무술 5기 중 하나인데 그 하나가 유술이었다.

중국에 ‘진혼창’이란 사람도 이와 비슷한 무술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갔다. 
 유도를 배울 때 사범에게서 인생의 참 깨달음을 알게한 말을 들었다.
그것은 무엇을 하든지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히 유도를 하면 안된다. 사람이 문무를 겸비해야지 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武)를 소홀히 하여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전 재산을 투자하여 유도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장 전 의장은 훌륭한 선생의 정신을 따라야 겠다며, 한시도 유도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의장님 그럼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라의 기능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라가 발전 하려면 3가지 기능이 필요하다. 첫째는 안보, 둘째는 경제, 셋째는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적 가치는 백성이 잘 사느냐의 문제이지만 안보가 무너지면 아무의미가 없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나 정치인들은 안보에 대해서 무감감적이다.

나는 나라 잃은 설움을 알고 있다. 그 시대에 살아 봤기에 말 할 수 있다.
지난번 국회의장이 제헌절에 국가 원로들을 초청해 한 이야기도 했다.
“가정에는 어른이 있어야 하고, 나라에는 원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이 없다.

▲이제 한국에 안보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복지와 국방예산은 동등하다. 미국은 국방예산이 더 많다.
현재 한국은 정말 위험하다. 북한은 남자들이 10년, 여자는 7년을 군대 생활한다. 북한군은 119만명인데 한국은 63만 정도이다. 한국은 국방비가 복지예산에 3/1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은 핵을 보유 하고 있고, 화생방도 세계 4위이다.

독일이 통일을 할 때 서독이 50만군, 동독이 13만이었다. 우리는 거꾸로다. 그리고 자꾸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사드배치도 반대한다. 사드배치는 미국이 한국인을 보호 하려고 두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다.

유엔 사령부 이하 미 8군 사령부 등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배치를 하려는 것이다. 사드배치 비용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비용을 한국이 다 부담해서는 안 되고 미국이 더 부담 하게 끔 해야 한다.

1970년에 미국이 철수 하려고 했다. 그 당시에 7천명이 철수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해 방안을 모색해 미국으로 직접 건너갔다.

방안은 미국의회에 직접 설득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하원은 설득 했는데, 상원이 문제였다.
상원은 설득 할 방법이 어려웠고 생각해 낸 것이 ‘진향매’라는 여인을 통해서 상원과 접촉 할 수 있었다.

‘진향매’라는 이름을 듣고 생각해 낸 것이 글씨였다. 신흠 (申欽/1566~1628)이 지은 시 중에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시가 번뜩 생각났다.  “오동나무 천년 늙었으나, 노래 항상 숨어 있고, 매화 늘 추위 속에 서 있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

직접 휘호로 쓴 글씨를 ‘진매향’에게 선물하니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시인줄 알고 ‘진매향’이란 여인이 대 만족을 하여 상원의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원들을 만나 설득한 끝에 미군철수는 철회 되었다./김진성 기자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