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한 시국, 미래를 향한 나라와 남도의 대전환 모색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한국시민기자협회 뉴스포털1 이윤정기자] 

촛불은 ‘도전’이다.

2016년 11월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능가할 정도로 나라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촛불혁명은 어떤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단 2016년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2002년, 2004년, 2008년에도 일어난 일련의 사회현상들이었다. 따라서 촛불혁명은 하나의 역사적 국면이었고, 한 시대의 표상이었다.

촛불혁명을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찾으라고 하면 아마 ‘도전’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평범한 대중이 역사와 사회질서를 향해 도전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촛불혁명은 단순히 사회 위기에 대한 수동적 저항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막다른 곳으로 내모는 시대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려는 사회개혁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 변화들을 만들어 냈다. 독선이 하늘을 찌르던 박근혜 정권은 순식간에 몰락하였고, 패권적 수구정당 새누리당은 역사상 최초로 조직적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추락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한 때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수준에 올랐으나 선거조작의 상시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로 전락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사회생의 발판을 만들었다.

촛불혁명이 가져온 정치적 변화는 점차적으로 보다 근본적 변화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첫째, 1987년 이후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고착되어 지난 30년 간 한국정치를 지배해 온 지역주의구도는 중장기적으로 해체될 것이다. 둘째, 지역적 독점에 입각한 패권적 양당체제가 현저히 약화되고 다당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다. 셋째, 대의제민주주의의 보완재로서 대중의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크게 강화될 것이다.

촛불혁명은 정치적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장차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촛불혁명은 가치와 의식의 혁명이었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가치관과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의 출현이 자리하였다. 그것은 ‘민주 대 독재’, ‘보수 대 진보’, ‘노동 대 자본’ 같은 근대적 지평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문명에 조응하는 사회계약을 창조하려는 새로운 정치대중들의 운동이었다.

세 가지 차원의 개혁압력

우리는 촛불혁명에서 제기된 사회적 요구의 본질을 천착하기 위해서 세 가지 차원의 압력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세계사적 차원의 압력이다. 지금 세계질서는 그 중심무대가 유럽-대서양에서 동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하는 대전환의 흐름 한 가운데 있다. 세계적 탈냉전 후 일시적으로 강화됐던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그와 함께 국제관계의 패러다임이 냉전시대의 전쟁‧군사패러다임에서 탈냉전시대의 경제‧문화‧외교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세계질서의 근본적 변동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대외전략에 대한 접근에서 시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둘째는 문명사적 차원의 압력이다. 다가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과학기술, 문화, 산업의 총체적 변동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 기술적 변화의 크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양식과 그것의 가치 및 윤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문명의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질적 재화의 총량을 바탕으로 한 성장의 가치보다는 삶의 질과 행복의 가치가 보다 중요한 인간 활동의 목표로 부상하고 있다. 노동은 물질적 가치생산 중심에서 다양한 인간적 가치의 창조와 생산이 중심이 되는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변화들은 종래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에 입각한 고용, 노동, 생산, 분배, 복지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같은 생산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노동의 가치 및 윤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셋째는 우리 내부적 차원의 압력이다. 우리는 지난 시대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선진국에 진입한 20세기 세계역사에서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요인들은 동력을 빠르게 소진해 가고 있다. 강력한 대통령의 리더십-고도의 중앙집권-재벌지배의 경제체제로 이루어진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 기존 민주화의 동력 또한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과거 민주화의 주체들은 기득권화 되거나 시대적 적응력을 상실했다. 이 같은 사회발전 동력의 소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특권화 현상이 초미의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고, 권위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결국에는 헌정체제의 파국적 위기를 낳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근본적 혁신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적 시간대

촛불혁명은 전 세계가 배타적 국수주의, 인종주의, 퇴행적 포퓰리즘의 기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때에 공존과 평화, 다양성과 개방, 참여와 소통의 가치를 구현해 갔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경이롭다. 자유주의의 본산국가인 영국과 미국에서조차 반자유주의적이고 퇴행적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전무후무한 현상들과는 달리, 촛불혁명은 비폭력과 상호배려, 연대와 공감의 실천을 통해 정의롭고 평등한 민주공화국의 가치가 구현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역사적 시간대는 세계사적 시간대 속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갈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존재하는가? 우리를 둘러싼 구조적 환경은 한편으로는 총체적 위기 요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세계질서의 대이동과 변화는 우리가 대륙과 해양을 잇는 평화, 인권, 경제번영을 위한 교류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객관적 환경을 촉진한다. 둘째, 과학기술, 문화, 산업의 급격한 변동은 우리의 가치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셋째, 우리는 지금 지난 2백 년 동안 쇠락, 망국, 동족상쟁으로 이어진 암울한 역사의 족쇄를 끊고 다원성‧진취성‧개방성의 고유한 가치정체성을 찾아가는 역사적 도정에 있다. 특히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지금 우리는 역사적, 사회적 성취를 규정하는 세 변의 조건들이 만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중의 강력한 역동성’ 대 ‘리더십의 빈곤’

역사는 단순히 객관적 가능성만으로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하는 최종적 관건은 정치다. 우리는 그간 후진적 정치시스템과 저열한 정치리더십으로 인해 사회의 도약과 진전에 근본적 장애를 받아 왔다. 지난 100년 간 우리 역사는 ‘민중의 강력한 역동성’과 ‘리더십의 빈곤’이라는 양자의 모순과 불일치로 점철되어 왔다. 그 때문에 우리는 민중들의 거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잃고 식민지로 전락했고,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수구지배질서와 재벌지배체제는 해체되지 않은 채 완강하게 지속되었다.최근 촛불혁명에 의해 수구지배질서를 지탱해오던 정치적 길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수구보수진영에만 책임이 있지 않다. 문제는 바로 대안세력의 부재이다. 우리는 튼튼하고 유능한 야당과 진보세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야당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강력한 도전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나눠먹기에 안주하는 기득권세력이 되어버렸다. 진보세력은 이기심인지 진보인지 두 개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진보성의 기준을 판별하는 더듬이조차 고장나버렸다.

역사의 불꽃은 리더십을 통해 작열한다. 노무현 돌풍,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그런 지도자를 목마르게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더십을 찾기 위한 국민적 실험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는 왜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을 찾는 데 실패했을까? 한 사회의 정치리더십 수준은 국민적 정치역량의 함수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특정인물 중심의 과두제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해 왔다. 정치리더십을 발굴하는 사회적 역량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개방과 참여를 확립하는 정치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에 우리 모두가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들이 낡은 기성정치에 줄서지 않고 올곧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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