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에 등 떠밀려 최순실씨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할 뿐이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딱한 것은 그 사과 조차 정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나는 당신이 거짓말을 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당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통령은 먼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표현 등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씨가 받아본 것은 연설문만이 아니다. 남북 군 관련 비밀접촉 내용이 담긴 극비 문건을 포함한 대북 정책, 청와대 인사, ‘국무회의 말씀 자료’까지 국정 전반에 대한, 가장 기밀을 유지해야 할 문건들이다. 더욱이 무려 200여개나 되는 파일이란다. 그야말로 ‘경악(驚愕)’이다.

대통령은 또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른바 ‘최순실 파일’에는 2014년 9월 박 대통령의 북미 순방 일정표까지 한 달 전에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으로서 집무를 시작한지 1년 반도 지난 시기다.

청와대 보좌진이 없었나. 전문성 없는 사적(私的)인 ‘도우미’ 최씨의 조언을 왜 들어야만 했는지, 왜 최씨가 고친 연설문으로 세계를 향해 연설하고, 최씨가 골라준 옷을 입고 언론 앞에 섰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아바타’인가, 아니면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아바타인가. 장자가 얘기한 것처럼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되는, 아니면 최순실씨가 대통령이 되는 ‘호접몽(胡蝶夢)’을 꾸는 것인가.

국민들은 대통령이 TV를 통해 고개 숙이는 모습에 잠시나마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배신감과 함께 더욱 증폭된 염증과 분노가 국민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후벼 팠다. 연민에서 돌아선 배신감, 분노라는 감정의 극단적 반전은 이제 국민들이 서슴지 않고 “이게 나라인가”라고 자조하며, 대통령 탄핵을 입에 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 감정적으로만 대할 문제가 아니다. 탄핵은 국가적인 위기이자 비극이다. 그런 만큼 최후 수단이 돼야 하고, 가능한 한 없어야한다.

일단 진상 규명이 먼저다. 신뢰 잃은 검찰이 수사할 사안은 아니다. 먼저 국회 차원에서 최순실씨 ‘온갖 비리 의혹’과 청와대 문건 대량유출, 그리고 우병우 수석, 차은택 감독 문제 등 다른 각종 의혹에 대해 특검과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법적 절차에 따라 진실을 밝힌 다음 위법 사항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위기로부터 국가의 최소한 품격을 지켜낼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입니다.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입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대통령은 문건의 내용보다도 청와대 문건이 외부에 유출됐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며 '국기 문란'이라고 이렇듯 단호하게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이 이젠 부메랑이 됐다. ‘신뢰와 원칙’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파일 관련, ‘국기 문란’ 혐의에 대해 이제는 거짓 없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고백을 해야만 할 시기다. 재임기간이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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