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칼럼=안중근 의거 107주년에 즈음하여

요즘도 심심치 않게 접하는 뉴스가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이 안창호인지 안중근인지 헷갈려 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만큼 역사 인식이 무지에 가까운 게 오늘날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우리는 현재 ‘역사를’ 배우기는 커녕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이자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집단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 사이의 틈새가 너무 넓어지면, 바로 오늘날 회자하고 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집행으로 감옥에서 미완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의 위대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정신’을 기억하고, 오늘에 이어가야 한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행위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일차적인 목적을 이루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안중근의 의도와는 달리 1910년부터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거의 또 다른 의도는 자신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안중근은 의거 목적을,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과 같은 이들이 계속 나와 마침내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독립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독립전쟁의 물고를 트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안중근의 의도는 조국의 위기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중근의 의거는 대한제국의 상황과 일제(日帝)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주변의 약소국가들에게는 희망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안중근은 이미 100년 전에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의 평화 체제를 구상한 사상가이자 그 구체적인 실천방략까지 고민한 위대한 실천가였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행한 마지막 유언에서 "나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형을 집행하는 관리들도 앞으로 한일 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은 동양평화였던 것이다. 그가 30여 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마지막 유언인 동양평화는 안중근의 삶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정수이며, 그가 존재했던 이유였다.

안중근은 자신이 이토를 사살한 한 이유를 "이토가 생존하는 한 동양의 평화는 무너질 뿐이어서 나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그를 제거하기에 이른 것"이라며, "이는 결코 사사로운 원한이 아니다"고 진술했다. 안중근의 옥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에서는 이토의 15가지 죄상 중 14번째로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를 적시하고 있다. 안중근은 자신의 행동이 동양평화를 깬 일본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며, 이토는 이런 정책을 고안하고 집행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깨는 전략을 수립한 이토를 하얼빈에서 암살하여 일본이 침략적 대외정책을 수정하도록 충격을 주고,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일본에게 서양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동양 삼국이 서로 협력하여 동양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도록 '새로운 방책'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안중근이 일본의 포악 속에서 숨진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내외의 정세는 어떠한가. 나라 밖으로는 여전히 외세의 거대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안으로는 편을 가르는 정치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다. 정치,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직시하고 잃어버린 시대의 빛을 찾아야 할 때이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간 안중근이 그토록 바라던 우리 민족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독려한 그의 바람은, 지금 우리 시대의 커다란 목표이자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그 뜻을 세워야 했던 안중근의 정신이 간절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사는 미래를 꿈꾸었던 안중근, 동양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단합하는 미래를 꿈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구자적 혜안으로 그 과제를 몸소 실천한 안중근. 그는 우리의 정신과 역사에 ‘평화 수호의 상징’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한편, 오는 10월26일 서울YMCA에서 진행한 안중근 의거 107주년에 즈음하여 ‘안중근 평전’토크 준비위원장 박언휘박사는 "이창호의 영웅 안중근 평전 북 토크가 국민들에게 점점 사라져 가는 의리, 예, 정직, 책임, 배려, 소통, 협동 등의 안중근 정신의 마음가짐과 사람 됨됨이의 핵심적인 가치를 전파해 나라발전과 동양평화에 기여하는데 그 뜻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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