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합의’와 균형을 회복하라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확실성의 증대

글로벌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 혹은 낮은 더블딥(double-deep) 현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더불어 향후 20년은 세계의 정치, 경제, 환경, 기술, 제도 등 모든 면에서 패러다임의 큰 축이 변화하면서 크고 작은 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련적인 세계변화(World-Spasm)의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보다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경제의 급격한 거시적 미래 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본질적으로 전망해보고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위기 대응체계를 구축할 것인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확대되는 세계 경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지 성찰해 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며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어 점점 더 복잡한 세상과 가파른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선적인 관점이나 특정 부분에만 의존해서는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인류는 향후 10~20년 동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불확실성 시대를 지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능력을 갖추려면, 변화에 민감하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서 볼 줄 알아야 하며, ‘변화를 꿰뚫어 보는 힘’과 통찰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번영할 것인가 vs. 쇠락할 것인가!

미국의 '비판적 지성'으로 명성이 높은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예일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 정치경제학 교수를 거쳐 현재 UC버클리대학 공공정책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거 3개 행정부에서 요직을 거쳤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을 맡은 바 있다. 또한 베스트셀러인 '슈퍼자본주의'와 '부유한 노예' '미래를 위한 약속' 등을 집필한 그는 도서 외에도 '뉴요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등 저명한 여러 언론매체에 통찰력 있는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최신작인 <위기는 왜 반복 되는가>(원제 After Shock/김영사)에서 라이시는 2008년 말부터 시작된 세계 대불황(Great Recession)을 초래한 근본원인은 중산층의 과소비나 금융기관의 과잉 증권화, 모럴 헤저드(Moral Hazzard)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구조의 왜곡, ‘소득 불균형 문제’에 있다고 보고, 역사적 검토를 통해 명쾌하게 폭로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9가지 구체적인 대안을 들어 경제위기의 여파가 던진 도전과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글로벌 금융유기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와 금융전문가, 정치가들이 작금의 경제 상황과 향후 전망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핵심적 주장은 역사적으로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 현상, 불평등의 심화, 계층 간 소득 격차 문제를 복권시키고,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괴리 속에서 점점 더 대기업의 편으로만 기울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라이시는 미국 역사를 보면, 변화하는 경제 혜택이 극소수에만 집중되는 시기와 중산층이 번영을 폭넓게 공유하고 빈곤층도 수용할 만큼 성장하는 시기 사이를 마치 시계추처럼 오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공동체적 사고가 우세한 시기와 개인적 사고가 우세한 시기를 번갈아 거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제1단계(1870~1929년)는 수입과 부가 점차 집중하는 시기였고, 제2단계(1947~1975년)는 번영이 더욱 폭넓게 공유되는 시기였으며, 제3단계(1980~2010년)는 다시 점진적 집중의 시기였다고 분석한다. 결국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번영의 폭넓은 공유가 다시 규범이 되는 '제4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 한다.

이러한 시각은 경제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장기지속의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살펴보면서 핵심적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장기 지속’의 역사관은 역사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데 커다란 도움이 됨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론은 크루그만에게도 발견되는데, <미래를 말하다>를 보면 정치과정을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정치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변화 발전되고 있는 지를 이 책과 유사한 방법으로 잘 분석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라이시는 경제사를 중심으로 소득불균형 문제를 핵심으로 드러내는 반면, 크루그만은 정치 우선의 불평등 심화 과정의 부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두 저서는 상보적으로 읽으면 좋을 듯싶다. 노무현 대통령도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와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를 면밀히 검토하고,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으며 주변에도 널리 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이시는 전후 약 30년 간 지속된 대번영 시기를 가능케 한 경제 구조는 대공황 이전에 존재하던 경제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말한다. 대번영 시기에 미국 정부는 ‘기본 합의’를 적극적으로 강제했다. 즉 케인즈 이론에 입각한 정책을 시행하여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달성했고, 근로자들에게 더 큰 협상력을 부여했으며,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공공투자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산층에게 돌아가는 소득의 몫이 증가하고 상류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감소했으며,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동안 상류층을 포함하여 국민들 거의 모두가 이익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Great Drepression)과 2008년 대불황(Great Recession)이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대공황의 주요 원인은 1920년대의 과도한 소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진짜 원인은 오히려 최상위 부유층이 소득의 방대한 축적을 한 것이 핵심원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극소수가 대다수 국민들의 구매력을 흡수해버린 것이 진짜 문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의 왜곡,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정책, 즉 “뉴딜(New Deal)" 정책을 시행하면서 공황을 극복해냈다고 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이후 중산층이 안정과 번영, 생산성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 시절에 고안되거나 개선된 고용보험과 노령 사회보장연금, 상해보험 및 장애인 복지, 60년대 제정된 메디케어(Medicare:노인 의료보험), 매디 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의료보험) 등은 그 후 불행이 닥쳤을 때조차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기본합의”로써 1947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대번영의 황금기”를 이끈 주요 정책이 되었다고 한다. 즉 중산층이 사회의 번영과 부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데 성공한 미국 정부는 완전고용이 이뤄지도록 경제 시스템을 재건하고, 소득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거둬들이며, 일반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증진시키고, 사회보장제도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공황 이후 근 30여년의 대번영의 시기를 누리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1970년 대 말부터 “기본합의”가 천천히 무너지는 슈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 상황이 오면서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일자리는 주어지는데도 중산층의 소득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반면 경제성장의 달콤한 열매는 대부분 다시 상류층으로만 집중되는, 대공황 직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계화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일자리의 개수를 감소시키지는 않았지만 과거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중산층의 소득이 갈수록 주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또한 정부는 기본합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각종 정책들을 등한시하고, 기업들이 직원 해고, 임금 및 복지 삭감, 노조 해체, 보험료 지원 중단 등 기본 합의 깨뜨리는 행동들을 정부가 방관하면서 소득이 다시 상위층에 집중되는 상황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2008년 대불황이 시작되고 만 것이라고 설명한다. 19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최상위 부유층 1%가 가져가는 비율은 9%에 못 미쳤으나, 이후 소득이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돼 2007년경 상위 1%가 가져가는 비율은 23.5%에 달했다고 한다. 소득이 이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마지막 시기가 1928년이었다고 한다.

‘기본합의’와 균형을 회복하라

그렇다면 2008년 대불황 이후 대책은 과연 어떠했을까? 라이시는 2007년 말에 시작된 대불황은 1930년 공황 이후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것과는 달리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전혀 창출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경기 하강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자본을 신속히 투입하면서 제2의 대공황이 될 뻔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외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근원적 문제, 대공황의 원인으로 파악한 '소득 불균형 심화 문제'를 경감하는 조치는 거의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이시는 경기 부양책과 통화량 증대의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장기간의 고실업률 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지난 30년을 지배했던 근원적인 트렌드가 되풀이 되고 만다고 경고한다. 즉 중위임금은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내려갈 것이고 대부분의 가구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질 것이며 불균형은 더욱 커져갈 것이라는 의미이다. 2007년 대불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무모했거나 소비자들이 돈을 너무 많이 빌려 썼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며, 대공황을 야기한 것처럼 국민 총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상위 부유층에만 집중되었고, 급료와 생산을 연결해주는 기본합의가 깨졌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제 미국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을 충분히 구매할 능력이 없게 되어 미국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그 합의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라이시는 그 합의로 9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1)역소득세 정책, 2)탄소세의 부과, 3)부자들의 한계세율의 인상, 4)실업 대책이 아닌 재고용 대책, 5)소득수준에 따른 학교 바우처 제도, 6)향후 소득과 연계한 학자금 대출, 7)전국민 메디케어 정책, 7)공공재의 숫자를 늘리고 무료로 제공, 9)정경유착을 지양하고 깨끗한 정치풍토의 마련 등이 바로 그 대안이다.

2008년 말 발생했던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해 여전히 고충을 겪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전반적인 경제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 고질적인 금융 투기, 빈부 격차의 증대, 중산층 축소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국제적 정책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구조조정 시나리오의 핵심을 보면, 달러의 일정한 가치하락은 불가피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중국 등 흑자국이자 채권국인 아시아 나라들이 수출주도에서 내수주도 성장체제로 전환하여 미국의 내수 축소분을 상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서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라이시가 제시하는 ‘9가지 대안’의 대상이 미국 중산층이고,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나, 검토해 볼만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도 보인다.

정리하면, 이 책 내용의 핵심은 바로 “소득 불균형의 해소”로 요약 된다. 이 책은 소득 불균형이 어떻게 공황과 불황을 가져왔고, 그걸 만회할 구체적인 정책 대안 - “기본 합의”를 복원하는 정책 - 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실질적인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중심의 일국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불균형과 불안정성 문제를 총체적 시각에서 상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든지, 공급주의나 통화주의를 비판하면서 기술 중심 수요창출이라는 케인즈주의 프레임의 연장선상에서의 분석만으로 꼭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며 충분한 방법인지는 의문이 있다. 하지만 경제 서적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쉽고 명쾌할뿐더러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여러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고, 꼼꼼히 읽고 토론해 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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