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바라아제

소설가 이보라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태초에 어둠을 걷은 것은 빛보다 소리가 먼저였을지 모릅니다. 똑똑똑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모교의 아침을 날마다 반야심경이 열었습니다. 로고송 한 소절처럼 귀에 익어가는 바라밀 경을, 나는 뜻도 모른 채 웅얼거리며 다녔습니다.

동서고금의 진리가 익히는 것마다 새롭고 재미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세상은 온통 꽃밭이었고 지기처럼 아버지가 물과 거름으로 가꾸었습니다. 모든 법은 공(空)하여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씀이, 그때의 내겐 바깥의 바람소리 같았습니다.

어느 해 봄에, 나는 아버지의 12년 주치의(主治醫)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건 꿈이 아니었습니다. 상복 앞섶이 다 젖도록 울어도 삭일 수 없는 분노의 표출이었습니다. 의료사고야! 그렇게 이웃에서 혀를 차는 현실이었지만, 아버지의 딸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살려내라 울부짖었고, 의사는 얼마나 보상받고 싶어 야단이냐고 물었습니다.

계란같은 내 주먹으로 바위같은 그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나는 힘없이 깨졌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고인이 되어버린 아버지께 더 이상 병원의 역할은 없었습니다. 덩치가 태산같은 사내 둘이 들어와서 고인의 딸을 짐짝처럼 들어냈습니다.

빈소에 쓰러져 있던 나를 깨운 것은 똑똑똑 찬물방울 같은 목탁소리였습니다. 아버지를 세상에 나게 했다는 할머니의 불심이 다시 오신 듯, 스님 한 분이 영정 앞에 오롯이 앉아 계셨습니다. 가자, 가자 저 평안의 언덕으로. 스님은 무언(無言)하셨지만 소리의 내용은 그랬습니다. 영정 속에서 아버지의 표정이 자꾸 바뀌었습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이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소리가 깃드는대로 아버지의 입술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나는 비로소 바깥의 바람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처럼, 말씀에 나를 의지했습니다.

마침내, 고통스레 누워계셨던 아버지를 따라 딸도 일어섰습니다. 아버지가 일구고 싶었던 내일이 나의 오늘입니다. 바깥은 아직 캄캄하여 더욱 궁금한 오늘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래 새벽은 설렙니다.

누군가 바닥을 비질하는 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문을 여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눈앞에 둥근 밭이 펼쳐집니다. 여기 꽃이 되신 아버지께, 나는 이제 세상의 지기가 되겠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2991호/2014년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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