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올라 서촌의 풍광을 담아낸 펜화 작품들로 주목받았던 ‘옥상화가’김미경(56) 작가가 이번엔 서촌 꽃그림을 들고 찾아왔다. 오는 11월 4~10일 갤러리 ‘창성동 실험실’(서울 종로구 창성동144)에서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 ‘서촌 꽃밭’에선 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서촌에서 피고 진 100여 가지 꽃들이 선보인다. 그는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7달동안 서촌 골목골목을 직접 찾아다니며 ‘우리 동네, 우리 꽃’들을 펜과 수채 물감으로 가로 10㎝, 세로 25㎝ 화폭에 담았다.

꽃은 옛날부터 많은 화가들이 다뤄온 흔한 소재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동네의 꽃들을 추적한 김 작가에게 꽃그림은 정물화가 아니라 기록물이다. 이는 지난 2월 열렸던 첫 개인전 ‘서촌 오후 4시’와도 맥이 닿아 있다. 김 작가는 “서촌을 그리는 작업은 서촌 속에 깊숙이 들어와 앉은 우리의 과거를 그리는 일이기도 하고, 서촌의 현재를 기록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서촌 그림 역사서를 쓰듯, 서촌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10달 만에 열리는 ‘서촌 꽃밭’역시, 세 계절이 바뀌는 동안 ‘그때, 그 서촌’에서 한철을 보냈던 꽃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올해 서촌에서 봉오리를 맺은 꽃들의 기억만이 아니다. 어릴 적 우리 곁에서 자란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기억이 아득해진, 잊혀진 꽃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진달래, 개나리, 찔레꽃, 봉숭아, 나팔꽃, 백일홍, 능소화, 맨드라미, 채송화…. 옛 기와집과 골목이 남아있는 서촌이기에, 담벼락에서 이 반가운 얼굴들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했다. 옛 동요와 시 속에서 남아있던 꽃들이 서촌에선 시간의 뿌리를 놓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작가는 이 꽃들의 역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또 꽃에 정신이 팔려, 손목이 상할 정도로 하루종일 펜을 잡았다. 펜으로 꽃의 골격을 완성한 뒤엔, 그 위에 옅은 수채 물감을 발라 마치 손을 대면 곧 뭉개질 것 같은 섬세하고 연약한 꽃잎의 표정을 담았다. 이렇게 작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꽃들은 개발과 산업화의 바람을 견디면서 끝내 꽃대를 꺾지 않은 서촌의 강인한 역사 그 자체다.

화가 박불똥은 그의 꽃그림에 대해 “지난 반년동안 바지런히 100점이나 선보이며 수많은 ‘미갱 마니아’를 거느리게 된 김미경의 꽃그림들은 마치 자연을경 배하듯 바닥에 두 손 짚고 엎드려 맨입으로 으흡, 흡 들이마시는 옹달샘 물맛처럼 담백하고정결하다”고 평했다. 전시는 11월 4일부터 11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이 전시회는 푸른역사아카데미와 함께 진행되며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복작복작예술로(路) “서촌에서 놀다”’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다.

전시 기간 : 2015년 11월 4일(수)~2015년 11월 10일(화)
오프닝 : 11월 4일(수) 저녁 7시
장소 : 창성동 실험실 (서울 종로구 창성동 144) http://www.cl-gallery.com/
문의 : 푸른역사아카데미 070-7539-4822 / purunacademy@hanmail.net

◇ 김미경 작가 소개

길거리와 옥상에서 서촌 풍경을 펜으로 그리는 작가. ‘서촌 옥상화가’로 불린다. 2012년부터 3차례 참여연대 아카데미 그림교실 단체전에 참여했고, 2015년 2월 17일부터 3월 1일까지 첫 개인 전시회 ‘서촌 오후 4시’를 열었다. 1960년 대구 생. <한겨레> 신문 등에서 2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전업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 작업 노트

이른 봄 진달래가 필 때부터 늦가을 국화가 질 때까지 계속 꽃을 따라다녔다. 아침에 눈뜨면 바로 골목길로 나섰다. 서촌 옥인동, 창신동, 체부동, 효자동 골목골목 꽃만 보며 다녔다. 한참을 헤매다 맘에 팍 와 닿는 꽃을 만나면 앉아 하염없이 그렸다. 꽃 그리러 인왕산에도 올랐다.

진달래, 개나리만 그리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자꾸자꾸 그리고 싶어졌다. 꽃 속에 역사가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추억이 있었다. 수없이 지나다니던 골목길에서 그동안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꽃들. 그런데 그 꽃을 그리니 잊혀졌던 추억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서촌에 피는 꽃을 그리는 일도, 서촌의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 되겠구나 싶었다.

◇ 박불똥 화가 추천의 글: 꽃만 그리며 살아도 되는, 행복한 사람

나는 ‘옥상 화가’ 김미경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가 올봄 개나리·진달래 꽃부터 시작해 “마음에 와 꽂히는 ‘서촌의 꽃’을 다 그리자!” 다짐하며 슬며시 시작했다는 ‘우리동네 꽃 그리기 프로젝트’의 진전 실황을 다만 SNS를 통해 이따금 지켜봤을 뿐이다.

그러다 07월 20일 맨드라미꽃 그림 포스팅에 덧붙인 화가의 말(“나 이렇게 꽃만 그리고 살아도 될까?”)에 이끌려 댓글성 게시물을 문득 작성하였고 그 인연으로 모종의 ‘숙제’마저 이리 자청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꽃, 우리땅에서 오래 함께 살아온 꽃, 산이나 들에서 자란 꽃, 화분이 아니라 골목이나 마당에서 자라는 꽃”을 찾아다니며 지난 6개월 동안 평균 이틀에 한 점 꼴로 철저히 현장사생을 수행 해낸 김미경의 꾸준한 열정은 자못 놀랍다.
더욱 탄복스러운 것은 한 장 한 장의 그림에 한결 같이 투여된 솜씨-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형태감과 색감-이다. 그린이의 심성이 곧지 않고 따뜻하지 않다면 결코 불가능할 묘사력이다.

페북 게재를 거듭해오면서 가히 ‘매니아 미갱단’까지 거느리게 된 그의 꽃그림들은 마치 자연을 경배하듯 바닥에 두 손 짚고 엎드려 맨입으로 으흡, 흡 들이마시는 옹달샘 물맛처럼 담백하고 정결하다.

꽃장면으로 시작해 꽃장면으로 끝나는 가와세 나오미(1969~) 감독의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를 보면서 받은 ‘감동-끌림’의 요체가 내 경우, 시나리오도 연출도 연기도 촬영도 ‘전혀 허세 부리지 않음’의 미덕이라 여기는데, 김미경의 꽃그림이 꼭 그렇다.

지상의 하고많은 중생들이 동시에 앙망해도 만월은 그 모든 간구에 일일이 응답하여 속삭인다. “나는 네가 봐주길 바랐단다. 그래서 빛나고 있었던 거야.”

제집 옥상에서만 서성이다 마침내 대문 밖으로 나섰고 이제 사방 골목을 수없이 쏘다니는 어느 화가한테 동네 곳곳의 방창한 만화는 저마다 빛나는 아마 달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김미경이 그려낸 난만한 백화 그 그림들은 온통 뒤뚱거리는 이 시대 세태의 멀미를 가라앉히려 뜬, 또한 보름달 같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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