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적응하기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뜻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간다.

- 소학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 유형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연령대를 짐작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즉 나이가 젊을수록 빠르고, 신나고, 고음인 노래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연령대별로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동요는 4,000㎐에서 8,000㎐까지 고음 영역에 주로 소리가 몰려 있다. 힙합은 4,000㎐ 영역의 소리가 많다. 그러나 중장년층이 즐겨 부르는 트로트는 2,000㎐대에 소리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다. 사람의 청각은 나이가 들면서 들을 수 있는 영역이 고음에서 저음으로 내려간다.

40대 이상이 되면 청각이 점점 노화되어 고음인 4,000㎐ 이상의 소리는 잘 들을 수 없는 영향으로 소리가 편안하게 잘 들리는 트로트에 열광한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신 “세월이 약이고, 세월 앞에 장사 없고, 세월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내 나이 20∼30대에 생각으로는 나는 평생 늙지 않고 주름살과 흰머리, 탈모 등이 절대 생기지 않는 항상 젊은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 같은 기분에 노화는 다른 행성 사람들의 이야기로 믿었고 판단하며, 나이 들은 어르신들을 보면서도 별다른 반응 및 실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가 벌써 중년이란 나이테를 갖게 되고 늘어나는 주름살과 흰머리, 탈모에 신경 쓰느라 시간을 빼앗기는 지금 나 자신도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는 것이 인간 삶의 순리인 것을 어쩌나 세월에 맞게 살아야 한다.

법정 스님이 말하는 ‘중년의 삶’은 중년인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기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살펴본다.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릴랑 하지 말고 조심조심 일러주며 설치지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 주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고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手中에 가진 돈 없고, 내 한 몸 아플 작시면 그 누가 제 몸처럼 날 돌볼까? 아프면 안 되오, 멍청하면 안 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속옷일랑 날마다 갈아입고, 날마다 샤워도 하고, 한 살 더 먹으면 밥 한술 줄여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시구려. 듣기는 많이 하고, 말을 적게 하고, 어차피 삶은 환상이라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사시구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강도는 다르지만 누구나 두 번의 사춘기를 겪는 다. 요즘 제일 무섭다는 중2들이 겪는 첫 번째 사춘기로 어린이에서 어른의 세계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자아로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하거나 방황하는 그 시기는 내 자신도 겪어 보았다. 그때의 우스운 모습을 회상하면 추억이란 기억으로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런 사춘기가 지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또 다른 사춘기가 나를 다시 찾아온다.

일명 ‘제2의 사춘기 또는 ‘중년의 위기’라고 한다. 특히 여성의 중년은 폐경과 겹친다. 이미 알고 있듯이 폐경은 여성의 몸과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폐경을 맞은 중년 여성은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여생에 대한 허무감으로 우울증 증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중년의 위기에 노출되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어 헤쳐 나가야 한다.

프랑스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토프 포레의 『마흔앓이』는 마흔부터 시작되는 중년의 상실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지 알려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 공유한다.

중년에 찾아오는 상실감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 즉 젊은 청년기와의 작별이다. 둘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썼던 가면이 마모되면서 겪는 상실감으로 참된 나라고 착각했던 페르소나와의 작별을 말한다. 평균적으로 후자가

우리에게 더 큰 상실감을 주고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젊지 않고, 젊은 시절의 미모와 매력을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그 사실은 ‘페르소나와의 작별’만큼 혼란스럽지는 않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또는 인정받기 위해 가면을 쓴다. 가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서 공적인 얼굴을 가꾸는 것이다. 부모님 마음에 드는 아들딸로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으로, 상사의 지시에 업무를 빈틈없이 수행하는 훌륭한 사원으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 이 와중에 칼 융이 그림자라고 부른 우리 내부의 무의식은 억압된다. 그런데 마흔앓이가 시작될 무렵에 이 그림자는 마모된 가면, 우리의 페르소나에 검은 그늘을 드리운다.

마흔이 되었다면 이제 자기 삶을 주도해야 한다. 누군가의 바람대로,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리며 사는 것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의 폭을 넓히고, 구체적 목표를 세워 그 선택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에미상을 수상하고 NBC 토크쇼 〈리자〉를 제작한 마릴린 켄츠고와 ABC 토크쇼 〈카릴&마릴린〉의 공동 진행자 낸시 앨스포다이 공저 『어머니 같은 중년의 삶, 안 된다』에서 두 저자는 인생의 전환점인 중년을 더욱 값지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런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려움 없이 노화 과정을 맞이하기 위한 10단계 가이드 과정을 거치도록 권유한다.

① 자신이 중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②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직시한다.

③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내버린다.

④ 정신적 지주를 구한다.

⑤ 인생과 자신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

⑥ 열정을 쏟을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⑦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가꿔 나간다.

⑧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⑨ 전문적인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

⑩ 존경하는 여성들의 통찰과 영감에 눈을 뜬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과 MP3 등을 이용해서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듣는다’. 이렇게 의도된 음악 듣기 외에 TV 광고 · 드라마 · 영화 그리고 생활 곳곳에서 음악은 끊임없이 ‘들린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음악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체로 구세대는 옛 가요를 좋아하고 신세대들은 신곡이나 힙합, 랩 등을 선호한다. 음악 취향에 대한 세대 차이는 다른 그 무엇보다 비교적 분명하다.

쇼팽의 곡을 듣고 한 남자가 자신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슬프고 비극적인 감정에 대해 말하자,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음악으로 인해 “그야말로 평범한 삶을 살던 한 남자가 감동의 극치를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베르 주르뎅은 “평범하게 살던 한 남자가 음악의 영향으로 감동의 극치를 맛본 것이 아니라, 이미 깊은 수준의 감정을 겪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음악으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듯이, 음악은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경험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편, 혜강과 마찬가지로 음악 자체의 미를 강조했던 오스트리아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도 자연과 음악과 인간을 서로 별개의 영역으로 보면서도, “작곡은 정신적인 재료에 대한 마음의 작업”이라며 음악이 인간 정신의 창조물로서 인공적인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음악이 ‘인간 정신의 창조물’이고 ‘인공적’이라는 것은, 곧 음악에 인간의 삶의 체험과 감정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느끼는 의미가 음악 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매일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반응만큼은 모두 들어 있다. 음악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아름답고 더욱 완벽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우리의 평범한 경험은 음악으로 인해 소중한 경험으로 바뀐다.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에서 위와 같은 로베르 주르뎅의 말이야말로 ‘음악을 왜 듣는지’,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오늘날의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진객과 동야주인의 말이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격 수양이나 음악의 조화보다는 내가 공감하는 음악, 즉 ‘성유공감론’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창작자의 삶의 체험이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것이 감상자의 삶의 체험과 공감되는 경우 감상자는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되지 않겠는 가. 얼마 전 TV 프로에서 청각 나이를 측정하는 실험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내용을 접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들을 수 있는 음역이 좁혀지다가 50살만 넘어도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줄어들어 2,000Hz 이내로 이 영역에 있는 트로트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의 굴곡진 삶의 결과, 골 깊은 감정의 결들에 ‘공감’하기에 트로트가 좋아진다.

스위스의 철학자, 시인, 비평가인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은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면 그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하루를 유익하게 보낸 사람은 하루의 보물을 파낸 것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냄은 내 몸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듯이 어느 날인가부터 트로트가 들리기 시작하여도 삶의 순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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