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터미널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다. 어려서는 고향 역 앞의 터미널에서 소년가장으로 돈을 벌었다. 지금은 사통팔달의 관문인 대전복합터미널 근처에서 산다.터미널과 연관된 가요는 많다. 윤수일이 2008년에 발표하여 히트한 [터미널]이 대표적이다.= “고속버스 차창 너머 외로운 소녀 울고 있네 / 가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끼네 / 기약 없이 서울로 가는 머시매(사내 아이)가 너무 야속해 / 차창을 두드리며 우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네 / 터미널엔 비가 오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터미널
여행은 로망(roman)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그 여행지가 바다 건너에 있는 곳이라고 하면 더더욱 가고픈 충동에 불을 지른다. 그래서 말인데 제주도는 내가 입때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행의 불모지(不毛地)였다. 그야말로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제주 관광을 준비하면 꼭 그렇게 불의의 사달이 발생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이러다가는 죽기 전 제주 관광은 어림도 없을 것’이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낭보가 찾아왔다. 내가 소속된 모 문인협회의 회장님께서 제주 회원들의 문학상 시상식에 가시는데 동행을 요
= “유수불부회(流水不復回) 행운난재심(行雲難再尋) 노인두상설(老人頭上雪) 춘풍취불소(春風吹不消) 춘진유귀일(春盡有歸日) 노래무거시(老來無去時) 춘래초자생(春來草自生) 청춘유부주(靑春有不住) 화유중개일(花有重開日)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 산색고금동(山色古今同)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 = 작자 미상의 인생(人生)이라는 한시(漢詩)이다. 한시는 한문으로 이루어진 정형시를 뜻한다. 고대 중국에서 이루어진 양식으로, 평측과 각운에 엄격하며, 한 구(句)는 네 자, 다섯 자, 일곱 자로 이루어진다. 고시, 절구, 율시, 배율 따위가 있다.
용두동 미르길 골목형 상점가 남태숙 회장 늘 소녀 같은 얼굴로 상인을 대한다.부족함이 많은 상점가이지만 솔선수범의 자세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주변의 어려운 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순수한 회장이다.누가 먼저라고 할것 없이 여성이지만 거침없은 추진력을 소유한 남태숙 회장이 좋아하는 "긍정과 신뢰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글을 옮긴다.어느 면접관이 면접시험에서 얼굴이말처럼 긴 응시자에게 이렇게 엉뚱한질문을 하였습니다."여보게, 자네는 지금 마치 넋나간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얼굴이 무척 길구먼...혹시 머저리와 바
2022년 4월 17(일)한국 관음성지중 한곳인 제 23호 송광사의 사찰을 통해 마음과 몸을 정화 해보고자 지인과 동행을 하게되었다.송광사는 『고려 시대에 보조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를 조직하여 선종의 근본도량으로 삼은 후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종찰로 자리 잡은 송광사 그맥은 현대에 이르러 강원,선원,율원의 조계총림을 비롯하여 불일국제선원,보조사상연구원 등으로 이어져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계승 ㆍ발전 시키고 있다고 한다.문화재청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선정한 「곱향나무」 쌍향수와 쌀 일곱 가마
숙성 돼지 생갈비의 첫인상‘숙성 돼지 생갈비? 이게 뭐지?’‘그냥 양념돼지갈비 아니야? 먹어보자’광주광역시 북구 저불로 69번길 15, 이씨네 푸줏간 용봉점.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간판을 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잠시 후 테이블에서‘이게 돼지 생갈비에요?’손님들이 마주한 돼지 생갈비의 첫인상이다.돼지고기 전문음식점 중 삼겹살, 항정살, 갈매기살 등을 취급하는 곳은 익숙하지만, 돼지 생갈비를 취급하는 전문식당은 많지 않아 일반 손님들에게 아직은 낯선 음식이다.이씨네 푸줏간 용봉점 김진욱 사장은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
양주백석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기 위해 신촌마을‘동이빵’이 출시되었다.2021년 양주시 행복마을관리소 성과유치회에서 백석행복마을관리소는 양주의 명물로 자리잡을 동이빵을 출시 한다고 밝혔다.이날 대회에서 신촌마을(이장:김성규)은 “불곳산자락 천녘골 에서 물동이로 물을길어 처녀고개를 넘어 생활수로 사용하며 살았던 신촌동이마을의 유래에서 마을의 특징을 담은 동이를 이름을 넣어 백석의 명물로 ‘동이빵’을 출시 한다”고 밝혔다.또한 “2년여의 기획을 거쳐 특색있는 신촌마을을 테마로 구축하고 지역을 활성화 하기 위해 마을 캐릭터인 동이 마스코
서울특별시 관악구 호암로 22길 60, 그곳에는 카페경영을 잘하는 대표가 있다 바로 이영주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평택 안중이 고향인 이영주 대표는 29세에 광명으로 시집을 와서 다양한 일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적성에 맞는 직업은 바로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라고 한다.현재의 위치로 이전 하기전에는 삼성동 주민센터에서 5년 넘게 해오다가 '코로나 19'와 우울증 심지어 원형탈모까지 와서 하던 카페를 원하는 사람에게 저렴하게 넘기었다고 한다.하지만 집에서 놀다보니 어느정도 심신의 안정과 함께 내가 잘할수 있는 일인 카페운영을 다
2021년 9월 15일 고시촌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학동을 찾았다.관악구청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경영개선 차원의 도움을 주기위해 '에듀맨 전문컨설팅 기관'에 의뢰하여 전문컨설던트가 대학동 상점가 상인회에 가입된 상인에 한하여 매출활성화를 비롯한 경영상의 애로점에 대하여 경청하며,매출활성화에 멘토링을 하고자 사전 약속후 방문한 '락락바'이다.관악구 서울대 입구 대학동,신림동은 한때 대한민국의 사법고시 준비생들로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할 정도로 붐볐던 곳이다
2021년 6월 29(화)요일 부터 시작된 전통발효식품 자격증 과정은 현재 3회차를 지나고 있다.교육장소는 대전 동구 계족로 88(신흥맛집 김치찌개 2층)열두달 장독대 아카데미이다.조선의 음식문화에 나오는 자료에 의하면 생산물의 저장과 보관시설이 미비하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생산량의 조절이 불완전한 탓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고른 영양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따라서 생존과 더나은 식생활을 위해 식품을 오래 보관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가공·발표 식품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밥을 주식으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한 인생을 논한다는것은 분명 힘들었을 지난 삶을 재조명 하게된 사실에 가슴 벅찬 일이다.여름을 채촉하는 비의 향연을 뒤로하고 찾은 만두인생의 장인 정지성 대표를 찾아 만났다."배고 고파 죽을 정도로 하늘이 노오란 빛으로 보였던 18세 청춘 까가머리 청년 정지성 장인은 그렇게 삶에 대한 배고픈 허기를 달래야만 했던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서두를 꺼내며 잠시 회상에 젖는다."배가고파 만두가게를 서성이다가 주인장이 건넨 만두에 매료되어 만두는 이제 정지성 장인과 운명을 같이하였다"그 시절을
합천 해인사로 올라가는 길목 우편에 김영환 장군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자세히 비문을 읽어보니 한국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내는데 큰 공을 세운 장본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공군 비행사이던 김영환 대령은 일본에서 칸사이대학 법과 재학중에 징집되어 일본군 육군 항공소위로 임명되었다. 이후 광복이 되자 일본군에서 소집 해제되었고 조선경비대 정보국장을 거쳐 친형인 김정렬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 창설요원이 되었다. 이후 6.25 한국전쟁을 맞이하였고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출전하였다가 빨치
1200년 역사의 고찰인 해인사 입구 인근에는 고승들과 성철스님의 웅장한 사리탑이 있다. 대한민국의 돈오돈수로 유명한 한국 현대불교의 큰스님으로 알려진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 출신이다. 성철스님의 사리탑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종단의 내분이 있었다고 한다. 사리탑의 기하학적 모형이 천년 고찰환경과 어울리지 않고, 부지가 너무 넓고, 청빈한 성철스님의 뜻에 맞지 않는 호화 사리탑이라는 점 등으로 분란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사리탑을 방문하였다.성철스님은 1912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진주고
국제웰빙전문가협회의 국제웰빙대상 수상자 백수연 교수의 안내로 잠시 방문한 진양호 공원은 방문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 힐링과 웰빙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데 그만이었다. 사실 진양호 공원은 전남 나주가 고향인 한국강사문인협회 대표회장인 국민대 범대진 박사가 진주 방문시 탐방장소로 추천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한국강사문인협회 전국 문인 페스티벌을 진양호 공원에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한강문 고문으로서 미리 자리를 봐 달라는 명분에서이다.국민행복강사의 눈에 들어온 진양호 공원은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촉석루는 진주의 남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상징이자 애국심 한 가지로 가락지를 낀 채 적장을 끌어안고 목숨을 바친 명승지이다. 남강의 비스듬한 바위 벼랑 위에 위치한 촉석루는 뛰어난 경치까지 볼 수 있는 촉석루는 전시에는 장졸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 또 때로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다. 지금의 촉석루는 한국 전쟁 때 불탄 것을 진주 고적 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1960년에 중건한 것이다.촉석루에 올라서면 임진왜란때 적장을 끌어 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논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
진주시내 한 복판을 굽이돌아 흐르고 있는 남강! 남강을 내려보는 곳에 위치한 진주성을 국제웰빙대상 수상자인 신바람웃음운동아카데미 백수연 원장의 안내로 둘러 보았다. 4킬로미터의 둘레의 외성과 1.7킬로미터 둘레의 내성으로 이루어진 진주성에는 촉석루, 창열사, 의기사, 북장대, 서장대, 양남포정사 그리고 국립진주박물관과 호국사 등이 단장되어 있다. 특히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에 관한 사료를 전문으로 전시한 역사박물관이라서 더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백제시대에 토성으로 쌓았던 진주성은 고려 우왕 5년에 왜구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진주목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에는 외적의 침입이 빈번했고 그 때마다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애국자들이 있었다. 국민행복강사가 국제웰빙대상 2021-03호 수상자인 신바람웃음운동아카데미 원장 백수연 명강사에게 대상을 전하러 방문했던 진주에서, 백수연 원장의 안내로 진주 곳곳을 탐방하는 행운의 기회를 가졌고, 가장 먼저 진주읍성 입구에 있는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 기념동상을 둘러보았다.충남 천안의 병천에서 출생한 김시민은 1578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92년에 임진왜란을 맞이해서 진주목사 이경이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구읍 민가 가운데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선후기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림들이 세운 옥천사마소(沃川司馬所)가 텅빈채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에서 200미터 이내 거리에 있으니 부담없이 방문해 보아도 좋은 곳이다.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7호인 옥천사마소는 본래 옥주사마소(沃州司馬所)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옥천이라는 이름이 행정명칭으로 바뀌어 지면서 옥천사마소로 훗날 불리게 된 것이다. 옥천을 옥주라고 부른 것은 고려 충선왕 5년인 1313년부터 조선 태종 13년인 1654년까지였다. 우암 송시열
충청북도 옥천은 말 그대로 옥구슬같이 보배로운 시내가 감싸고 있어서 문전옥답으로서 농업이 잘 되는 풍요로운 땅이다. 국민행복강사의 조상들도 수 백년 간 살아온 옥천은 현대시의 거장인 정지용 시인을 배출한 문학감성이 풍부한 황금땅이다. 정지용 시인은 옥천 구읍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세계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 갔다.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에 버금가는 한국의 문학인을 손꼽으라면 단연 정지용 시인이 아닌가 싶다.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부활' 같은 명작을 집필했던
향수 정지용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