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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부
창의적 글쓰기 (역량강화 사업교제)
한국시민기자협회 2013-11-06 19:25:45 | 조회: 3120
창의적 글쓰기(이 교제는 동강대학교에 다니는 한국시민기자협회 학생기자회원이 회원들을 위해서 올려논 논 창의적 글쓰기 자료입니다. 글쓰기 공부해서 사회를 밝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랍니다)

■ 여는 글

그것이 글을 쓰는 실질적인 이유다.
나는 유명해지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창조적으로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 아나이스 닌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차례

■ 여는 글
3
1. 글과 말이란 무엇인가
6
2. 글쓰기, 말하기의 기본
- 문제의식
13
3. 글쓰기, 말하기 자세 1
- 잘 듣기, 잘 읽기
18
4. 글쓰기, 말하기 자세 2
- 하나, 둘, 셋
23
5. 글쓰기, 말하기 방법 1
-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28
6. 글쓰기, 말하기 방법 2
- 문장은, 짧게! 내용은, 자세하게!!
33
7. 문단쓰기
38
8. 오류에서 탈출하기
42
9. 추론 활용하기
47



10. 살아 있는 글쓰기 1
- 글이 곧 삶이다
52
11. 살아 있는 글쓰기 2
- 삶이 드러난 글들
56
12. 살아 있는 글쓰기 3
- 행복해지기
60
13. 살아 있는 글쓰기 4
- 읽기와 쓰기는 하나다
65
14. 살아 있는 글쓰기 5
- 가르치기와 배우기는 하나다
69
15. 살아 있는 글쓰기 6
- 비고츠키 : 협력을 통한 전면적 발달
74
16. 나와 우리를 살리는 글쓰기
- 이오덕, 프레이리, 비고츠키
79
17. 토론하기 1
- 토론의 목적 : 설득
82
18. 토론하기 2
- 토론의 자세 : 하나, 둘, 셋, 넷
86
19. 토론하기 3
- 토론방식 : 입론, 교차조사, 반박
91
■ 단편소설 : 필론의 돼지 - 이문열
96


■ 편집자 주
다음의 글들은 백청일 선생님이 광주드림에 2011년부터 2012년에 기고한 글들 중에서 관련된 내용을 모은 겁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글과 말이란 무엇인가



# 사례 1 - 초등학생
“우리 아이는 글을 정말 잘 써요. 보통 한 두 페이지는 그냥 쓰더라구요. 간혹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표현도 쓰구요.”
“아, 그래요? 아이가 생각이 아주 많은가 보네요?”
“그건 모르겠구요,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서 잘 쓰더라구요. 가끔 학교 논술 대회나 학교 바깥에서 하는 대회에 나가면 금상이나 대상을 받아오더라구요.”
“그래요? 그럼 글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잠시 뒤,
“에구, 어머니, 이건 줄거리가 대부분인데요?”
“아니, 서론도 있고 본론도 여러 개 나누어서 쓰지 않았나요? 결론에다는 소감도 썼는데?”
“내용을 보니까 서론의 동기는 학교에서 읽으라고 해서 읽었다는 거구요, 본론은, 줄거리를 여러 문단으로 나누어서 쓴 거 잖아요. 결국 모두 줄거리죠. 그래서 이 글은 결론이 중요해요. 책을 읽고 진짜 자기 생각을 말한 곳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결론이 본론 간단히 요약하고 아주 감동적이었다는 내용 정도잖아요?”
“그렇게 쓰면 안 되나요? 다른 선생님들은 아주 잘 썼다던데요?”

# 사례 2 - 중학생
“우리 아이가 부산영재고등학교(또는 외고, 과학고 등)를 지원하는데, 제출 서류에 자기소개서가 포함되어 있어서요.”
“네, 그러세요. 그럼, 접수 마감일이 언제인가요?”
“모레까지요.”
“에구, 좀 늦으셨네요?” “아니, 다 썼어요. 쓰긴 썼구요. 그 동안 혼자서 쓰기가 어려워서 우리(부모)랑 같이 이것저것 자료를 다 모아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구요. 자기소개서도 그렇게 썼는데, 한 일 주일을 여기에 매달렸더니 이제는 머리가 다 아프네요.(웃음) 여기저기 보여줬더니 다들 잘 썼다고들 하는데요. 그래도 한 번 보여드리고 내고 싶어서요. 뭐, 시간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아서 그냥 낼까 하다가 가져와 본 거에요.”
“네, 그럼 한 번 봐드릴까요?” 잠시 뒤,
“어머니, 말씀 드리기 좀 뭐하지만, 이 자기소개서는 너무 일반적인데요. 심하게 말하면 너무 획일적이라는 건데요, 자기소개서에는 ‘자기’, 그러니까 ○○이가 어떤 사람인지 읽혀져야 하는데, 이게 전혀 드러나지 않았어요. ○○이만의 소개서가 아니라 보통 남들도 다 이렇게들 쓰잖아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아니, 남들은 다들 잘 썼다던데요, ○○이가 잘 드러난다고요,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가요?”
“지원동기를 보면요, 왜 이 학교를 지원해야 하는지 학교조사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부영고의 어떤 프로그램과 어떤 시스템, 학교 환경 등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지가 나타나 있지 않답니다. 쉽게 말해서, 부영고 자리에 외고, 과학고를 넣어도, 심지어는 그 자리에 서울대, 연대, 고대, 카이스트 등을 집어 넣어도 다 제출할 수 있는 지원동기잖아요.”
“……”
“교수들이 이걸 모르겠어요? 그리고 장점으로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했는데요, 줄곧 학급 반장을 맡아 왔고, 지금은 학생회장을 하고 있다는데요. 이 자체가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걸 말해주지는 않잖아요?”
“아니, 왜요? 학생회장 하면 리더십이 뛰어난 거 아니에요?”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하면서 반 친구들과 전체 학생들을 위해서 무얼 어떻게 했는지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야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겠잖아요? 그리고 교수들도 요즘에는 중고등학교 현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해요. 선거 없이 학교 측에서 성적이 좋으면 학생회장을 시킨다든가, 선거를 하더라도 인기 투표 형식으로 뽑는다든가, 막상 뽑혀도 딱히 할 일이 없이 그냥 이름만 있는 학생회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내용이 중요한데, 여기에는 내용이 없잖아요?”
“……”

# 사례 3 - 고등학생
① 고 3
“제가 수시로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요, 원서를 쓸 대학들이 논술 시험을 봐서요.”
“그동안 왜 논술 준비를 안 했어요?”
“논술은 2, 3개월 하면 되지 않아요?”

② 고 1, 2
“대학 가려면 논술 준비를 하라고 해서요.” “잘 생각했어요. 생각이나 관점이라는 게 단기간에 형성되지는 않죠.”
“근데요, 제가 할 것도 굉장히 많은데, 빨리 잘 쓰고 싶은데요.”
“학생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는데요, 글쓰기나 말하기는 단지 요령만 배운다고 쉽게 늘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꾸준히 정리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토론이나 글쓰기를 통해 충분히 첨삭받고 익히면서 …….”
“저도 알아요. 근데, 서울지역이나 수도권 얘들은 대학에 많이 합격하잖아요? 그에 비해 광주나 지방 학생들은 합격률이 낮고. 그러니까 뭔가 합격의 노하우 같은 게 있지 않나요? 글 잘 쓰는 비결이나 기술, 그런 거요. 그런 걸 가르쳐주시면 좋겠는데. 다른 데 가면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던데…….”

# 사례 4 - 일반인(학부모 포함)
“아이들 글쓰기나 독서 활동을 지도하고 싶은데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찾아왔어요.”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평소 책을 좀 읽으시나요? 또 글은 좀 쓰세요?” “아뇨, 제가 직접 찾아서 읽고 쓰면서 가르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여유는 없구요. 아이들을 지도 할 때 필요한 몇 가지를 알고 있으면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니, 어렵게 결정하신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 책도 읽으시면서 함께 노력하시면 좋을텐데요.”
“그럴 여유가 없다니까요. 글쓰기에 필요한 기술 같은 게 있잖아요? 서론, 본론, 결론 같은. 그리고 보통 글을 쓰면 문장을 좀 다듬어 주잖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그런 것 좀 배우면 되지 않나요?”
“아, 네, ……”
“그리고 요즘에는 지식이 중요하잖아요? 하도 지식들이 넘쳐 나니까 진짜 ‘자기 지식’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많이 들어 있어야 얘들이 글 쓸 때나 말 할 때 그게 제대로 나오겠잖아요? 그리고 요즘 시험에는 교과서 외 문학 작품들도 많이 나온다던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잘 정리 할 수 있을까, 뭐 그런 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말하기)를 잘 하려면,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그걸 잘 풀어낼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딩동댕!!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부모들과 상담하면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위와 같은 말들을 자주, 많이 들어왔습니다. 글쓰기란 결국은 기술과 지식의 문제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글쓰기를 할 때도, 첨삭 지도를 받을 때도 이미 우리들의 머리 속에는 ‘정답’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글(말) = 기술, 지식

이걸 알고 있으면 무지 편하지요. 아무리 어려운 주제를 주더라도 그에 맞는 지식들을 떠올려서 적당한 기술들을 이용하여 글을 쓰면 되니까요. 심지어 좀 더 연습을 하면, 상도 받는답니다. 학교에서나, 학교 밖에서나. 그러니까 글 좀 쓴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기도 하지요. 어떻게 하면 좀 더 화려하게 글을 쓸까, 어떻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그래서 여기에 맞는 지식들을 찾게 되고 그걸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적당한 기술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요. 이런 글을 ‘보여주기 식 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글쓰기나 말하기, 둘 다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합니다.

“우리 애는(저는) 말은 잘 하는데요, 글은 잘 못써요. 그러니까 서론, 본론, 결론 같은 그런 기술들을 배우면 글도 아주 잘 쓸 것 같은데요.”
“우리 애는(저는) 글은 정말 잘 써요. 그런데 말을 잘 못해요. 말 잘 하게 하는 스피치 기술 같은 거 없을까요?”

두 경우 모두 말을 잘 하는 수준만큼 글쓰기 수준도 끌어올리고 싶다는 거지요. 또는 글쓰기 수준만큼 말하기도요. 그런데 책을 읽고 감상글을 쓰는 경우에 글을 잘 쓴다는 친구들 글을 보면 보통 줄거리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쓸 때는 글쓴이의 생각이 중요한데, 이건 아주 약하게 들어있고 글 대부분을 줄거리로만 채운 거죠. 또한 감정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다고 해서 말하는 걸 잘 들어 보면, “영화를 봤는데 이러저러해서 감동적이었다”거나 “저러이러해서 생각할 점이 많았다”식입니다. “이러저러하다, 저러이러하다”는 건 장면이나 줄거리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느낌이 풍부하다는 것 또한 “정말로”, “진짜로”, “굉장히” 같은 감탄사가 주를 이루는 간단한 표현뿐이죠.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는 건 ‘길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거구요, 그것도 줄거리 중심으로, 말을 잘 한다는 건 ‘많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일 뿐이지요.

이건 초등학생들만 그런다구요? 천만에요. 중학생도 그렇고, 고등학생들도 그렇답니다. 심지어 일반인들도 그렇습니다.
보통 초등학생 때 배운 글쓰기는 중고등학생을 지나 평생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초등학생 때 ‘쉽게’ 글쓰기 하는 ‘비법’을 배웠거든요. 그 비법은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칭찬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면 ‘비법’의 수준이 아닌, ‘진리’라고 인식하게 되지요. 이미 내 머릿속에 진리를 담고 있는 데 뭐가 어렵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평생을 가는 거지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일은, 그 ‘진리’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겁니다. 글 쓴 내용에 대해서 이런 저런 첨삭과 말을 하면 보통 학생들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그렇게 질문해 놓고도 도통 고치려 들지를 않는답니다. 그래도 시간이 한참 흐르면서 조금씩 좋아지긴 해도 자신을 휘어 감고 있던 ‘유혹’의 글쓰기 ‘비법’, ‘진리’를 쉽게 떼어버리지 못하더라구요. 이런 현상은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한 듯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인 저항’을 보이는 거지요. 우리 몸과 무의식은 ‘익숙함’에 길들여진다고 하는데요, 구본형씨는 이를 ‘어리석은 일관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럼, 이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글쓰기는 어떤 걸까요?
보통 이들은 서론에는 동기를, 본론에는 줄거리를, 결론에는 요약과 자기 생각(주장)을 쓰지요. 서론의 동기는 부모님의 권유로, 선생님의 권유로, 대회 준비로, 신문에서 보아서, 우연하게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보아서 등. 본론은 줄거리 중심인데, 버전 1) 진짜 줄거리만. 버전 2) 줄거리 여러 줄 쓰고, 느낌 한 두 줄 쓰고, 줄거리 여러 줄 쓰고, 생각 한 두 줄 쓰고. 결론은 요약과 자기 생각을 씁니다.
이들의 서론은 너무도 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답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늘 비슷한 글을 쓰지요. 본론의 문제는 줄거리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줄거리는 책에 대한 소개이지 책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걸 버전 2)로 변형합니다. 그래놓고 큰소리치지요. “느낌이나 생각도 좀 들어가 있잖아요?” 고구마나 감자를 캘 때 아시죠? 위로 들어올리면 아래 있는 것들이 위로 쑥- 올라오면서 방울방울 달려 있는 것들이 보이는데, 근데 이것들의 크기가 각각 다르잖아요? 이들의 본론도 그렇답니다. 위로 쑥- 올려 보았더니 줄거리만 큰 놈으로 몽땅 있고 느낌과 생각은 아주 작은 것들로 보기에도 짠하게, 쪼금, 붙어 있는 꼴이지요. 그래놓고 결론은 요약하기를 합니다. 요약하기란 자신의 생각이 많아서 일단 정리를 좀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줄거리 중심으로 써 놓은 글을 다시 요약하면 그게 뭐가 되겠어요? 다시 줄거리가 되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 생각. 이무기가 드디어 천 년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면서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데요, 그런데 이건 허물을 벗었더니 왠 가느다란 실뱀이 있는 꼴입니다. 자기 생각이 지극히 단순하게 몇 줄로 정리되어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와 말하기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이렇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스펙을 요구하고 남들과 다른 경쟁력을 요구하고 그래서 결국 ‘성공 신화’에 매달려서 무한 경쟁의 한 길로 ‘올 인’하게 되지요. 이럴 때 글쓰기와 말하기 또한 속성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를 이용한 상술이 판을 치고 있는 거지요.
글쓰기와 말하기는 ‘생각의 문제’입니다. 친구에 대해서, 학교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대학에 대해서, 직장에 대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의 꿈에 대해서, 오디션 열풍에 대해서, 비정규직에 대해서, 희망버스에 대해서,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서, 안락사에 대해서, 낙태에 대해서, 동물실험에 대해서, 나로호 우주 개발은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지구 온난화가 진실인지에 대해서, 세계적인 기아와 전쟁에 대해서, GMO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 ‘생각’을 ‘사고력’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이해력, 논리력, 비판력, 창의력은 중요한 사고력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자신의 개발과 사회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능력들입니다. 그러나 사고력은 ‘사고력’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고력은 생각이 아니라는 거지요. 왜냐구요? 사고력은 ‘기술’이지만 생각은 기술이 아니거든요.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관점’이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컵에 물이 절반 정도 들어 있으면 이걸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물이 절반 밖에 없네”하겠고,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물이 절반이나 있구나”하겠지요. 성범죄자에 대해서 화학적 거세법안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겠구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대학생들은 시간급 4580원을 받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일해서 하루 22900원을 벌지요. 그렇게 공부할 시간도 쪼개고 연애할 시간도 쪼개고 해서 알바를 하지만, 편의점 사장 중에는 4580원을 제대로 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더 심하지요. 전세 대란이라고 불리우는 시대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월세를 놓습니다. 1억짜리 전세 아파트는 은행 이자가 낮기 때문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받지요. 그러나 이 월세는 세입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는 액수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자신만의 입장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니까 생각은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인 거지요.
이것을 다른 말로는 가치관,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심하게 아프신데, 집 팔고, 은행 융자 내고,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도 약값의 절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훔치겠다는 사람이 있지만, 훔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지요. 부모님과 사회정의에 대한 저마다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세계화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라고 하는데, 그것의 한 현상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을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인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와 말하기가 생각, 관점, 입장, 가치관, 세계관의 문제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글과 말이 곧 생각이자, 관점이자, 가치관, 세계관이라고. 그런데 글과 말을 좀더 신중하면서도 중요한 차원으로 끌어올려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글(말) = 삶

글과 말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산전수전 겪어온 사람에게서는 말 마디마디에서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흔적들을 엿볼 수 있지요.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은 삶이 주는 고귀한 선물인 희망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삶을 살려고 하지요. 초등학생의 경우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쓴 글에는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정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곤 합니다. 다만, 욕을 쓰지 마라, 친구들과 심하게 싸운 나쁜 내용은 쓰지 마라, 싸웠더라도 반드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써라 등 이런저런 검열을 외적으로 받다 보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솔직한 글을 쓰지 못할 뿐이지요.
글에는 쓴 사람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만, 쓰다 보면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떠올리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게 되는데, 이건 학생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옆 친구에게 수학 문제를 풀어주다 보면 자신이 어느 정도 그 문제를 이해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하잖아요. 글과 말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자신이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만 쓰는 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걸 다시 확인하면서 쓰게 된다는 건데요, 이런 상호적인 관계, 피드백 과정을 거쳐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글이 성숙해져가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글은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이지만 이미 그 도구 수준을 뛰어넘어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그래서 그 글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려고 하고 투영된 자신을 재확인하면서 새로운 나로 거듭나고 다시 이걸 글로 드러내는, 이러한 상호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지요. 그래서 글(말)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하는 거겠지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이 ‘죽음의 구덩이’를 벗어나서 마당으로 옵니다. 그러나 마당 식구들은 하룻밤만 재워주고 쫓아내지요.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 족제비를 피해 마당으로 들어서는 잎싹을 문지기인 개가 막아섭니다. 마당에서 살 수 없다구요. 나는 왜 마당에서 살 수 없느냐는 잎싹의 물음에 개는 규칙을 말합니다. “내가 문지기로 살아야 하고, 수탉이 아침을 알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너는 본래 닭장에서 알을 낳게 되어 있었잖아. 마당이 아니라 바로 닭장에서! 그게 바로 규칙이라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잎싹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꿈을 가지고 살아가면 모두 잎싹이지요. 그런데 그 잎싹들이 ‘규칙’이라는 ‘틀’과 ‘굴레’에 얽매여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하면 왜곡된 진실과 검열이 유혹합니다. 쉽게, 빠르게, 간단하게 배우고 익히자고.
그러나 삶이란 그리 쉽던가요? 간단하던가요? 글과 말 또한 그리 쉽고 간단하지 않다는 건 진리겠지요. 우직한 ‘우공’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글과 말 또한 또 다른 ‘자신’이니 우직함이 곧 지혜스러움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2. 글쓰기 말하기의 기본, 문제의식
- 노예의 삶과 주인의 삶!



# 중학교(고등학교) 교실 풍경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이다. 놀고 싶기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싶고.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도 싶고. 그러나 그 모든 걸 대학에 합격 한 후에 해라. 그 때 해도 결코 늦지 않다. 그러니 앞으로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열심히 공부만 해라. 앞으로 6년(또는 3년)이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한다.”

학생 1 : ‘그래, 이제부터 열심히 해서 반드시 SKY 대학을 가자. 아무리 못 해도 ‘in 서울’ 하고.’
학생 2 : ‘왜 꼭 죽어라고 공부만 하라고 하지? 공부 말고 다른 걸 할 수는 없을까?’

# 버스나 지하철 파업 때
뉴스 : 오늘로 버스(지하철) 파업이 진행된 지 3일쨉니다. 현재 ○○ 시민들은 발이 묶여서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노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시민 1 : “저것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 되는 거라고. 자기들 이익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대하려는 저것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이 안 되는 거라니까.”
시민 2 : “아니, 뉴스에서는 왜 파업을 하기만 하면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하지? 무조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고 있다고. 그럼, 파업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니까 가능하면 안 하는 게 좋다는 거잖아. 그런데 어느 노조가 파업을 즐거워서 하겠어? 해도 해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데. 그런데 왜 뉴스에서는 노조가 무엇 때문에 파업을 벌이는지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 거야.”

현실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겪는 일입니다. 학교에서는 늘 열심히 공부해라, 시킨대로만 하면 대학 간다고 외치고, 방송은 파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아!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성적이 저조한 아이들은 대학에 갈 수 없는 루저(looser) 인생들”이고 “파업 현장에 외부 불순세력이 개입해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학생 1’과 ‘시민 1’의 모습은 아주 당연하게 보입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교과서를 정답처럼 생각하고, 방송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고, 그래서 그렇지 않은 말과 모습, 행동들을 보면 절로 얼굴이 찡그려집니다. 그래서 학생 1은 가끔 선생님과 논쟁하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잘난 척 한다고 생각하고, 공부도 못한 것들이 저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1은 나라에서 하는 일은 문제가 있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여러 의혹도 부정하고, 농축산업이 피해를 보더라도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으므로 나라 전체적으로는 이익이니까 FTA를 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얘기를 듣다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걸 왜 묻지? 혹시 ~”
가끔은 질문하는 쪽이 무안할 정도로 얼굴 표정과 말투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될 때도 있습니다. 당연한 건데 묻는 건 혹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거나 자기 생각을 나에게 주입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섞인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를 가득 담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지요. 심지어 질문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보다는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가 볼 때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요.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에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를요.”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격앙돼서 말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요,
“아니, 그런 걸 왜 내가 말해야 하죠? 그럼, 선생님은(또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이상한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대화란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에 대해서, 정서와 감정, 영혼에 대해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 그 사람과 관계된 사람들과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지요. 그런데 이쯤되면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주 보고 들었던 내용을 정답처럼 생각하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착각’을 한 상태에서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르친 대로, 보도한 대로 충실하게 따르는 모두가 ‘앵무새’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건 또 두 부류로 나뉘는데요, 자신의 신념인 것처럼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몇 번 질문을 하면 결국,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지.” 하면서 한 발 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자는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식이구요, 후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려는 비겁한 모습이지요.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쉰이 쓴 「아Q 정전」의 아Q는 ‘정신적 승리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벽에다 쿵쿵 찧고 주먹과 발로 때리고 차고 행패를 부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 뒤 아Q는 툴툴 털고 일어나서는 씩 웃지요. ‘나는 자식놈에게 맞은 셈이다. 요즘 세상은 정말 꼴 같지 않아!’
그런데 이걸 한인들이 알아차리고는,
“이것은 자식이 아비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그래 나는 버러지야.”
아Q에게서 보이는 정신적 승리법은 일종의 ‘노예 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이끄는 나랏님들은 하늘에서 내리고 평생을 땅 파서 생존에 허덕여야 하는 우리는 원래가 천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정신과 영혼까지 갉아먹어서 아예 ‘무뇌아’가 된 상태에서 하라면 아무 생각없이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아Q는 노예인 거지요. 다시 말하면, 학생 1과 시민 1은 아Q와 똑같은 ‘노예’인 겁니다.
그에 비해 학생 2와 시민 2는 ‘사람’이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하고,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정해서 그것만 쫓아가려는 게 아니라, 그게 과연 정답일까, 왜 모두가 똑같이 말할까, 저게 과연 자신의 생각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늘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걸 가리켜서 ‘문제의식’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문제의식이란 사람인가, 노예인가를 가르는 기준인 거지요.
노동운동의 상징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동료들과 모여서 만든 모임의 이름이 ‘바보회’였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그게 있는 줄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폐병이 걸리면 걸리는 대로, 산재가 발생하면 쫓겨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은 그게 자신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전태일과 친구들만 그랬겠습니까? 6, 70년대를 살아갔던 노동자들이 다 ‘바보’였던 거지요. 물론 전태일과 친구들은 그런 바보에 그치지 않고 ‘바보들이 모여서 바보답게 한 번 들이받고 죽어불자’라는 의미까지를 담았으니까 이들이 말하는 바보는 ‘역설’인 셈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똑똑한 바보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더 많은 접속의 기회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바보로 살고 있지요. 수많은 지식과 정보, 말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은 없이 다수가 말하는 대로, 힘 있는 쪽이 주장하는 대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 몸을 맞기고 그냥 따라가는 거지요.

‘문제의식’은 그래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첫 출발이 바로 이 ‘문제의식’이지요.
보통 학교에서 자습!을 말합니다. 자습이 바로 자기주도학습입니다. 하루 몇 시간 자습을 할 때 오늘은 무슨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시험기간 때도 무조건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3주, 2주, 1주 단위로 큰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세부 계획을 세웁니다. 이건 생일 파티를 준비할 때도, 자기 방 청소를 할 때도, 음식을 요리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평생 동안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려는 자세야말로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이런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입니다. 어느 한 시절에만 그렇게 하고 나중에는 편하게 살겠다는 게 아닌, 평생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늘 자문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인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니까요.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교육환경은 어떤가요? ‘입시’에 목매달고 유명 대학 나오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어렵고 거기에 수많은 스펙을 요구하고 그래서 결국 무한경쟁에서 승리하여 행복하고 안락한 노후생활을 대비하라고 하지요. 대화와 인권, 자유와 꿈, 좀더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하면 여전히 별종 취급을 당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어도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회를 봐라,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패배하지 않느냐, 결국 1등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1등이 되기 위해서 내신과 수능을 열심히 준비해라. 세계적인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이를 가리켜서 ‘은행적금식 모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적금을 했다가 필요하면 꺼내서 쓰는 것처럼 학생들 또한 지식을 몽땅 넣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는 거지요. 쉽게 말하면 ‘주입식 교육’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주입식 교육에 물든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비판하는 거지요.
그런데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또한 잘 짜여진 공장입니다. 공장에서는 ‘상품’을 만듭니다. 정해진 과정에 따라서 부품을 갖다 붙이고 조립하고 구성해서 마지막 불량 점검에서 통과하면 ‘상품’이 되지요. 그래서 공장은 상품이냐 불량품이냐의 기준만 존재하는 곳입니다. 공장에서는 효율적이고 계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한 표준화 과정을 거쳐서 최고의 합리적인 상품이 만들어지지요. 우리 사회 또한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법’을 가르치고 그 비법대로 하면 당연히 성공을 한다고 가르치고 그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어마어마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피 흘리며 경쟁해야 하는 기존의 ‘레드 오션’을 뛰어 넘어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시장인 ‘블루 오션’을 개척하라거나 아예 기존의 레드 오션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는 ‘퍼플 오션’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문제의식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성공을 이야기하고 뒤처지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위협 앞에, 무엇이 옳은가, 다르게 접근할 수는 없을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은 한참이나 어리석은 질문 같습니다. 특히나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의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 속에서 이런 고민과 연구는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이 가다가 멈춰 섰습니다.
어, 어,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이내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립니다.
장애인 몇 명이서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는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거지요.
지하철이 30분 정도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필이면 왜 퇴근시간에 그런다니?” “저것들 때문에 지금 내 약속 시간이 너무 늦겠는데.”

자신의 시간 ‘30분’은 아까와 할 줄 알지만 평생 동안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장애인들의 ‘평생의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그게 맞는 건 줄만 알다가, 자신의 취미 생활과 개인 생활에만 심취해 있다가, 사람과 사회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놓치고 있는 거지요. 생각 없이 살아가는 아테네 사람들을 보고 ‘잠든 암말의 옆구리를 찌르는 등에’라고 표현한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리면 잠들어가는 사회적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문제의식’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으로서,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사회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첫 출발은 작을 수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힘은 자신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큰 힘이 될 수 있는 거지요.



3. 글쓰기, 말하기 자세
- 잘 듣기, 잘 읽기



# 토론에서
찬성 학생 :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강력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 동안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그러다보니 사회가 너무도 혼란스러워져서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정의를 제대로 세우려면 강력범을 저지른 사람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 학생 : 그러나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강력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통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강력범죄가 늘었다고 해서 사형제도를 유지하면 범죄가 줄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학생 : 아니, 그러면 어린이를 납치해서 성폭행을 하고 평생을 불구로 만든다거나 살해한 사람들을 버젓이 살려준다는 말인가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 면접에서
“지원동기가 뭐죠?”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또는 언론 등)에 대한 흥미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과목보다도 과학 수업 시간에 더 적극적이었고 각종 과학 경시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 과학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좀더 깊이 있는 과학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이 대학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얘기는 잘 들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에 많은 학생들이 과학자를 꿈꾸는데 모두 다 과학자가 되지는 않죠? 그러니까 과학자가 되고 싶은 ○○ 학생만의 어떤 계기나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더 했을 것 같은데, 그걸 좀더 얘기해 보세요.”
“예? 그런 건 없는데요. 과학 좋아해서 그런다고 말하면 안 되나요? 꼭 그런 게 있어야 해요?”

# 독서 수업에서
“다음 제시문을 보면 조나단은 보통의 갈매기들과는 좀 다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았다 - 즉 먹이를 찾아 해변을 떠나고 되돌아오는 것 이상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는 문제는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갈매기에게는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게 문제였다. 그 무엇보다도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샘, 갈매기들이 먹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조나단처럼 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어때서요?”


요즘을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합니다. 개인의 경쟁력, 학교의 경쟁력, 기업의 경쟁력, 국가 경쟁력 등 어느 곳에서나 경쟁력을 외치지요. 그러다보니 스펙이 중요하고 실적과 홍보가 중요하고 보여주기가 중요합니다. 모두 자신을 어떻게 하면 폼나게 드러낼까, 하는 거지요. 그래서 ‘말하기’와 ‘쓰기’가 중요해졌습니다. 그것도 ‘효과적인 말하기’와 ‘효과적인 글쓰기’가요. 그런데 말과 글은 급하다고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해서, 할 것이 많이 있다고 해서 단기간에, 속성으로, 완벽하게, 습득할 수는 없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더군요.
샘! 아무리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수학이나 과학, 영어는 속성이 가능하잖아요? 심지어 국어도 한국어능력시험처럼 핵심을 중심으로 선수 학습이 가능하지 않나요? 세상일에는 항상 문제가 있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감안하고 속성으로 선수학습 차원에서 미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는데요.
물론,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가르치고 있고, 심지어 방법을 가르치면서 농반진반(!)으로 ‘너희들에게 천기누설해서 200살까지 살 걸 150살 밖에 못 살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방법이 중요하다는 걸 저도 익히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저는 방법을 가르칠 때 이번에는 과장을 좀 섞어서 ‘글쓰기와 말하기의 방법이나 기술, 지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발가락 사이에 낀 때라고 생각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러냐구요? 방법이란 비유하자면 칼과 같은 무기입니다. 칼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일을 깎을 수 있지만,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면 강도나 살인을 할 때 쓰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말하기와 쓰기 ‘방법’에 앞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게 바로 ‘자세’입니다. 이것은 시간 걸리고, 성과가 쉽게 나지 않고, 결과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두 싸잡아서 폐기처분해 버리면서 경쟁력만 외치는 요즘의 분위기에서 특히 더 중요한 겁니다. 다르게 말하면 말하기와 쓰기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다는 건데요, 그게 바로 ‘듣기’와 ‘읽기’입니다. 그러니까 말하기와 쓰기의 ‘자세’는 ‘잘 듣기’와 ‘잘 읽기’라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들 잘 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본다고도 하구요. 과연 그럴까요? 위에서 제시한 사례들은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위 사례들은 모두 문제점이 있습니다. 토론의 경우, 찬성 학생은 자신의 입장은 잘 말하지만, 반박을 들으면 이내 화를 냅니다. 왜냐구요? 어린이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를 어떻게 살려둘 수 있겠냐는, 자못 인도주의정신에 투철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사람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지요. 그것은 자기 생각만 옳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들으면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며 이해하지를 않는 거지요.
면접의 경우, 학생은 준비한 대로 말을 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학생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요. 갑자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생각할 때 그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 전공 학과에 지원하겠다는데 그러면 그걸로 되는 거지 거기에 꼭 어떤 계기를 만들어야 하나,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데, 이 학생 또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그러니까 천편일률적이고 붕어빵 같은 답안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싶은 마음에서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속도 없이 면접관의 출제의도를 생각하지도 않고, 면접관의 아량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기분 나쁘다고 내뱉는 거지요.
독서 수업의 경우, 학생은 제시문을 읽고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학생이 볼 때 조나단과 다른 갈매기들은 서로 좋아하는 게 다를 뿐인데 이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는 거지요. 혹시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고,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고 너는 닭고기를 좋아하고, 뭐가 문제야, 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바로 “먹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조나단은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게 문제였다”고 하지요. 다시 말해서,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애쓴 거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갈매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는 거라고 모든 갈매기들은 그렇게 알고 살아 왔는데 갑자기 한 갈매기가 그것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할 수도 있는 걸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 거지요. 전통과 익숙함, 새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자세는 그냥 다르다고 넘어갈만한 문제는 아니지요.
이들 문제점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자세’가 좋지 않습니다. 모두 잘 듣지도 않고, 잘 읽지도 않는 거지요. 듣기와 읽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닫힌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닫힌 자세란 ‘나’만, ‘자기’만, ‘우리’만 중요하고, 정답이고, 진리이고, 정의이니 그 이외의 것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개인의 성공만 중요하고, 우리 가족의 행복만 중요하고, 우리 종교를 믿어야만 천국에 가고 남의 종교는 지옥에 간다든지 사이비라고 매도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만 세계적인 민족이고 위대한 민족이고 만주와 중앙아시아까지 다스렸던 엄청난 역사를 가졌던 훌륭한 민족이라고 자화자찬합니다. 이러한 닫힌 자세는 자기 것만 고집하는 ‘자아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김상봉 교수는 이를 가리켜서 ‘홀로 주체성’(『나르시스의 꿈』)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있으면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합니다. 형식적으로는 대화이고 토론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말싸움에 불과한 거지요.
그에 비해 열린 자세는 ‘배움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자세란 현재의 내 상태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는 데서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틀릴 수도 있고, 타당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고, 그게 더 타당할 수도, 더 적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는 거지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런 자세는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들은 삶이란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부족하고 힘들더라도 좀더 노력해서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성숙이고 발전이고 진보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삶을 비관적이고 패배의식에 젖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하게는 열등감에 휩싸여 있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래봤자, 뭐가 얼마나 변하겠어?” “해봐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역시 나는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정리해 보면, 글쓰기 말하기의 기본 자세는 ‘잘 듣기’와 ‘잘 읽기’인데요, 이런 자세는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갖는데서, 더 나아가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살려고 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자세는 비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우리는 많이 겪으니까요. 이런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피해를 많이 주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서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 무슨 이야기만 하면, 감히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또는 내 의견에 대해서 감히 반론을 하다니,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냐는 식으로 화를 냅니다. 학생에게서 어른의 모습이, 어른에게서 그 자녀들의 모습이자 학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는 겁니다.

“꿈이 뭐니?”
“의사요.”
“무엇 때문에 의사를 하려고 하니?”
“돈 많이 벌잖아요. 30세쯤 전문의 따서 개업하고 그렇게 10년, 15년 정도 일하면 45세쯤 되는데요, 그때부터는 여행도 다니고 쉬엄쉬엄 놀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어요.”
“의사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만은 아니지 않니?” “에이, 샘! 무슨 말씀인지 아는데요, 그 정도는 다 생각하지요. 환자를 생각하고, 인술을 펼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저도 그럴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만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45세쯤 될 때는 이제 저를 위해서 사는 거죠.”

오랜 전부터, 해마다, 수시로 이런 학생들을 만납니다. 차이가 있다면 최근 불경기가 심화될수록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졌고, 또한 예전보다 더 당당해졌다는 겁니다. 부모의 꿈이, 사회의 꿈이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이식되어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걸 볼 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그 생각 어딘가에 내 모습 또한 어른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인 거지요.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늘 깨우치고 자신의 삶을 좀더 성숙하게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하는 거겠지요. 그런 자세야말로 자기 자신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진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늘 확인합니다.




4. 글쓰기, 말하기 자세 2
- 하나, 둘, 셋



얼마 전 2차 노동자기자학교(광주지역 민주노총 금속연맹 주최)에서 강의를 하는데 노동자 한 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글을 쓰는데 잘 써지지 않는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그러다보면 30분, 1시간이 지나도 몇 줄 정도밖에 못 쓸 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하나?
위와 같은 질문을 여기저기서 받곤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정리가 안 된 경우일 수도 있고, 자료조사가 부족할 수도 있고, 버릇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만의 어떤 맥락이 있을 수도 있다구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1층에 철로 만든 제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2층에서 자석을 내려서 많은 제품들을 끌어올리고 싶은데, 이게, 웬걸, 끌어 올려봤더니 몇 개만 더덕더덕 붙어 있더라는 거죠. 그런데 옆 사람을 보니 많이 끌어올리고 있네, 에구, 창피해라.
자석에 해당되는 건 ‘주제’입니다. 철 제품에 해당되는 건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입니다. 어떤 주제를 내 머릿속으로 집어 넣어봤더니 타닥타닥타타타타타 …… 하고 생각들이 달라붙는 경우가 있고, 어떤 주제는 생각이 탁, 탁, 하고는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있지요. 어떤 사람이 주제를 받아 들었는데, 접하는 주제들마다 첫 번째 경우라면 그 사람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내공을 갖춘 실력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일 겁니다. 어떤 주제는 강하지만 대부분의 주제는 아주 약해서 잘 떠오르지 않는 거지요. 주제별로, 연관된 주제별로, 다양한 주제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거지요. 이것은 그만큼 생각 훈련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한답니다. 글을 쓰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료조사를 별로 하지 않고 대충 글을 쓰지요. 자기 머릿속을 뒤집어보고, 헤집어보고, 파헤쳐보고, 안나오네? 그래도 뭐가 나오지 않을까,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고, 그게 겉으로 드러난 게 바로 ‘노트 흔적’입니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못해, 아예 찢어지려고 하는^^.
그런데 이렇게도 안하면서 왜 글이 안 써지지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게 바로 ‘버릇’입니다. 원고지와 노트를 앞에 두고 그냥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거지요. 물론 본인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서요. 그러나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서 이렇게 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비유하자면, 수학문제를 풀 때 초급자가 볼펜과 연습장도 없이 눈으로만 수학문제를 보면서 풀려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암기과목 공부를 할 때도 그냥 눈으로만 훑어보는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볼펜을 들고 핵심어와 핵심문구, 주제문장,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면서 메모하기도 하면서 공부해도 부족한데요. 바둑 사활문제를 풀 때 역시 초급자가 바둑판 위에 돌을 놔보지도 않고 문제만 보면서 머릿속으로 풀려고 끙끙대는 경우도 이와 같지요.
그런데 이 버릇이란 놈이 참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답니다. 웃으면서 쉽게들 말하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이게 쉽게 고쳐지지 않거든요. 여든까지 갔을 때는 그걸 버릇이라고 하지 않고 습관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어쩌면 천성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요. 어떤 대단한 계기가 있어야 작심을 하고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게 보통 사람이라고 치면,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아마 한 동안 이런 버릇은 오래 갈 겁니다. 그래서 무섭다는 거지요. 어쩌면 계기가 주어졌다고 해도 의식적인 노력과 주의와 첨삭과 격려가 없다면 이게 또 쉽게 나아지지 않지요.
저는 이게 글쓰기, 말하기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에 이 자리에서 저는 글쓰기, 말하기 자세를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와 이번 글을 구분하자면 1회 때 글쓰기, 말하기 자세는 ‘원칙’에 해당되는 거구요, 이번 2회 글쓰기, 말하기 자세는 ‘기술적인 측면’에 해당됩니다.
<글쓰기, 말하기 자세 1>에서 저는 “글쓰기 말하기의 기본 자세는 ‘잘 듣기’와 ‘잘 읽기’인데요, 이런 자세는 배우려는 열린 자세를 갖는데서, 더 나아가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살려고 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법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자세’라고 했지요.
<글쓰기, 말하기 자세 2>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걸 좀더 정식화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 글을 쓰는 시간보다 무엇을 쓸까를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라!
; 쓰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라!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쓰면서 고치고 쓰면서 고치고 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요. 생각을 하지 않고 글을 쓰는 버릇을 바둑에 비유하면, ‘손 따라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둑은 한 수, 한 수 생각하면서 둘 때 기력이 향상됩니다. 바둑을 둘 때 마음이 급하면 상대방이 두기 바쁘게, 달리기 경주하듯 바로바로 두지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두면 바둑이 늘지 않는데, 에이,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단 말이야’ 하는 말을 늘 되풀이 합니다. 즉, 본인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이 말은 어떻게 하면 실력이 는다는 걸 진짜(!) 모르는 겁니다. 입으로만 ‘안다’고 하는 건 진짜 알아서가 아니라 ‘입버릇’이지요. 입버릇은 좋은 버릇이 아니잖아요. 입으로 내뱉기 전에 한 번이라도 꾹-, 참고 한 번 생각하고 두자, 그럴려면 먼저 내 손목을 꽉 잡고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는 놔두지 말자, 고 해야 그게 고쳐집니다.
글 쓸 때도 마찬가지랍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답니다. 생각을 묵혀 두지 않으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잘 쓰지 못하는 건 바로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글 쓸 때면 생각하기가 귀찮고 싫으니까 대충 생각하고 글쓰기를 하는 거겠죠. 이렇게 해서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생각! 생각! 외치고 뇌되이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쓰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라’는 건 ‘자료조사’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가 심합니다. 그런데도 강행하지요. 이 주제로 글을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자기만의 분명한 입장과 관점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보완해줄 어느 정도의 자료들도 가지고 있겠지요. 그래서 그런 정도의 자료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말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보다 자료조사를 더 해서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자기 쪽 자료만 가지고는 자신의 입장만을 보여줄 뿐 상대방의 입장과 논리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한 서평 정도로만 그치고 넘어가기 일쑤거든요. 그러니까 글이나 말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자기쪽 근거와 논리는 상당한 분량인데도 상대방 쪽은 구색 맞추기 식으로,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니까 평행선을 달리는 거지요. 또는 마주보는 치킨게임처럼 파국을 향해 달려가거나.
보통 소설가들은 충분한 자료조사가 되었어도 쉽게 쓰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답니다. 무언가 문학적인 ‘필’이라고 하는 그런 사례를 찾지 못한 거죠. 글을 쓸 수는 있는데, 아니 쓰고도 넘치는데 아직 ‘그 분’이 안 오셔서 글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거지요. 꼭 문학적인 글이 아니더라도 글을 어느 정도 써 본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이해합니다. 쉽게 말하면 본론과 결론은 이미 충분히 전개할 수 있겠는데 서론으로 무얼 써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그만큼 첫 도입부가 어렵다는 거지요. 저는 이 경우에도 늘 자료조사를 하는 마음으로 늘 ‘열린 자세’를 갖고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것 또한 자료조사에 해당되니까요.
정리하면, 글을 쓰고 말을 하기 전에 자료조사를 충분히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라는 거지요.

둘째, 두려움을 없애라!
; 무조건 써라!
쓰기 전에 생각을 많이 했으면 그 다음 단계는 일단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무조건 열심히 쓰라는 거지요. 여기에는 두 유형이 있는데요, 진짜 글쓰기 초보와 초보가 아닌 사람입니다.
진짜 글쓰기 초보의 경우에는, 쓰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자료조사도 했으면 진짜루, 냅다, 무조건 쓰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무슨 시합에 나온 게 아니잖아요? 글쓰기 대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대로 그냥 쓰면 됩니다. 남이 알아보지 못해도, 형식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았어도, 원고지나 노트에 기록하지 않았어도, 글씨를 못써도, 남을 배려하지 않았어도 잘못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창피해 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에 글을 쓸 때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줄려고 한 게 아니거든요. 그냥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조건 쓰는 거지요. 그리고는? 또, 씁니다. 그리고, 또 쓰고요. 그러다 보면 내 생각이 좀 더 분명해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내면, 그리고 진짜 자기 실력이 솔직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의 내 자신을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답니다. 그런 자기를 인정하는 그 순간에요.
초보가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충분히 하고, 자료조사도 충분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충분히 개요짜기를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써야겠다는 걸, 전체 흐름을 잘 잡았으니까 무조건 쓰면 되겠지, 자, 그럼, 아, 그런데도, 쓰지 못합니다.
초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요. 무조건 쓰려니까 괜히 어설픈 것 같고, 글 꽤나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쉽게 잡히지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지요. 저는 위에서 소설가의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요, 이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프로급’의 경지이지요. 가끔 프로들도 그러드라, 하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걸 말하기 위한 실례지요. 그러나 아마추어들이 생각날 때까지, ‘그 분’이 오실 때까지 마냥 기다리다가는, 아마 오늘이 아니라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못 쓸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러니까 역시 글쓰기를 좀 한 사람도 쓸 때는 ‘무조건 써라’입니다. 무조건 쓰다 보면 쓰는 과정에서 당연히 초보자의 경우와는 다른 경지를 보인답니다.

셋째, 끊임없는 비판과 수정을 통해 글쓰기를 완성해라!
; 꼭 첨삭을 받아라!
야구문제 하나 내 볼까요?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급 투수는? 바로 선동열입니다. 이왕 낸 김에 하나 더. 우리나라 최고의 강타자는? 이승엽을 들지요. 이 두 사람은 야구를 ‘정말’ 잘 합니다. 오죽했으면 국보급 투수라고 하겠습니까. 이승엽은 아시아의 최고 홈런 기록을 세운 장본인이죠. 그런데 이들은 슬럼프가 없었을까요? 있었답니다. 슬럼프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겠지요. 그때 이들은 어떻게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니,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물론, 말 하나 마나 본인들의 의지와 노력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들 옆에서 그들을 모니터로 분석하면서 정교하게 투구 폼과 타격 폼을 교정해 준 코치들도 한 몫 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슬럼프가 한 동안 더 길었거나 아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슬럼프는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쓴 글을 다 썼다고 그냥 제출하면 안 됩니다. 꼭 비평을 받아야지요. 누구에게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글 잘 쓰는 사람에게요. 자신이 평가 하는 걸 ‘고쳐쓰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글 잘 쓰는 사람이 평가하는 걸 ‘첨삭’ 한다고 하구요. 자기 글을 자신이 다시 읽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서 매끄럽게 만드는 노력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잘못 썼다거나 문제가 있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창피해 하지 않고 글 잘 쓰는 사람에게 늘 보여주어서 평가를 받으려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었을 때지요. 혼자서 쓰면 늘지 않습니다.
날마다 축구공을 100번씩 찹니다. 그렇게 한 달을 연습하고 축구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래도 자기 실력이 별로 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을 찰 때의 팔 동작과 다리 동작, 몸 전체의 밸런스, 그리고 발의 맞는 부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공을 차는 임팩트 순간에 힘을 주기 등을 계속해서 지도를 받고 점검하고 그렇게 연습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공을 차는 순간의 동작이 자신의 몸에 익숙한 걸 느낍니다. 그렇게 정교하게 코치를 받으면서 훈련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거지요.
혼자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열정과 사랑을 조금만 더 자신에게 채찍질해서 주변의 글 잘 쓰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수고를 들여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결코 늘지 않는 게 글쓰기니까요. 첨삭 없는 글은 앙꼬 없는 찐빵이랍니다.



5. 글쓰기, 말하기 방법 ①
-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 사례 1 -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
“저는 ○○○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장애인들에 대해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장애인분들을 위해 여러 일들을 했는데요, 식사하는 걸 도와드리기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방 청소도 했는데, 그 분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휠체어를 밀어 드리면서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장애인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 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함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장애인분들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례 2 - 감명깊게 읽은 책
“어린 왕자는 소혹성 B612호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꽃과 양과 함께 살다가 지구로 오는데, 지구로 온 어린 왕자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저는 이를 통해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살던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되는데, 저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이 장면에서 나눈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친구란 서로 길들인다는 거고 길들인다는 건 서로 관계를 맺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친구 관계란 서로를 길들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왕자는 ‘나’를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와 만나서 10여 일을 함께 보낸 후 뱀에게 물려 결국 자기 별로 돌아가는데요, 이 장면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친구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말과 글은 곧 삶이라는 것, 말하기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문제의식이라는 것, 말하기 글쓰기 자세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잘 듣고, 잘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말하기,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의 ‘순서’를 다시 언급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구요? 그건 순서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고 또한 이것은 순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최첨단의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핸드폰과 인터넷과 노트북을 한꺼번에 결합한 기기들이 조금의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습니다. 매뉴얼을 익히고 사용법을 익히기도 벅찰 뿐만 아니라 새로운 걸 따라가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 취급 당하기도 합니다. 점점 빨라지는 과학기술문명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지식과 기술력을 갖추고 자기만의 노하우를 개발하여 늘 전투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그 모든 걸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방법’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시대임에도 ‘순서’가 중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꿰어 못 쓰듯이, 시간 없다고 방법을 먼저 배우자라든지, 방법만 알면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람들로 하여금 멀리 보지 못하게 하는, 정서적으로 메마르게 하는, 세상과 사회를 자신의 그릇에 담지 못하게 하는, 정작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을 담아 내지 못하게 하는 악의 지름길(!)이기 때문이지요. 방법을 배우면 지금 당장, 그러니까 학창 시절에는, 대학 시절에는, 면접 볼 때는, 하는 것처럼 그때그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나오는지, 앞의 것들과 어떤 관련성 속에서 연동되어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할 뿐입니다. 그럼, 그때뿐입니다. 다음에 그와 유사한 상황에 닥치면 자신의 변화된 상태와 자신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이전에 배웠던 방법을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똑같이 적용할 뿐이지요. 그래서 자세가 중요하고, 문제의식이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삶으로서 말과 글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말하기, 글쓰기 방법으로 저는 늘 두 가지를 말하는데 먼저, <①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실’과 ‘의견’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합니다. 의견을 사실처럼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거나 쓰곤 하지요. 사형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사형제도는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사형제도가 갖는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는 건데, 장점을 보는 사람은 찬성할 것이고, 단점을 보는 사람은 반대할 것이다, 는 식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곤 합니다. 이건 안락사에 대해서도, 학생인권조례안 제정에 대해서도, 세계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긍정성과 부정성이 있는데 어느 것을 좀더 보느냐에 따라 자기 생각이 나뉘어진다는 식이죠. 그러나 이렇게 말하거나 글을 쓰면 ‘의견’이 아닙니다. 이건 자기 생각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니까요. 왜냐구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의 생각을 묻는 것인데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어찌보면 이렇게 표현하도록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주변에서 강요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불이익을 받으니까 둥글게 둥글게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게 좋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삶의 태도도 문제지만, 정작 문제는 이걸 자기 생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확신을 가지고 ‘그게 내 생각인데 뭐가 문제죠? 왜 자꾸 내 생각을 말하라고 그러죠?’라고 오히려 반발하는 경우입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일 뿐이라는 걸 아무리 설명해도 ‘소 귀에 경 읽듯’ 딴 나라 사람 이야기 듣기 식으로 그게 자기 생각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런데 ‘의견’을 ‘사실’이라고 우겨대는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진리는 종교적인 믿음의 영역이지요. 불교나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죽으면 좋은 곳으로, 나쁜 일을 많이 하고 죽으면 나쁜 곳으로 간다는 건 죽어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인간으로 볼 때는 확인할 수 없는 ‘의견’인 거지요. 물론 종교인들은 그걸 ‘사실’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종교적인 믿음 생활을 ‘사실’ 영역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또한 명확한 증거와 근거를 가지고 전사회적으로 ‘사실’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설’이라고 하지요. 천안함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만행입니다. 그건 모두가 동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만행을 누가 했을까? 북한이다! 라고 말하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구요? 천안함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사실’이라고 말할 때는 모두가 100% 동의할 때나,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인 증거와 자료가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수도 없는 의문점들이 따라다니는 국방부의 발표 말고는 결정적이고 확정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부의 발표가 ‘사실’의 위치에 올라서려면 여러 의혹들을 풀어야 하고 더 투명하고 공개적인 조사와 발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때까지 천안함의 진실은 ‘가설적 수준의 의견’인 셈이지요.
말하기, 글쓰기 방법으로써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는 두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 사실은 사실이고 의견은 의견이다.
② 사실에서 의견이 나온다.

첫째, 사실은 사실이고 의견은 의견이다는 건, 어찌 보면,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연상케 합니다. 산을 산이라고 말하고, 물을 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장애와 방해물에 가려 진실과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사실과 의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을 의견이라고 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이라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이 왜 사실인지를, 의견이 왜 의견인지를 명확히 해야 하지요. 이건 사실은 객관적이 거고 의견은 주관적인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건 무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거나 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이걸 관념론 철학과 유물론 철학에 유비하여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갈림길 중 하나는 바로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습니다. 관념론이 ‘대상’을 하나로 본다면 유물론은 ‘대상’을 둘로 보지요. 그건 바로 ‘현실 대상’과 ‘사고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현실 대상’은 ‘사실’인 셈이고, ‘사고 대상’은 ‘의견’인 셈입니다. ‘현실’과 ‘사고’는 엄연히 다릅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우리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사고’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을 진짜 존재하는 ‘현실 대상’이라고 우겨댄다면 그게 바로 왜곡이자 조작인 거지요.
둘째, 사실에서 의견이 나온다는 건 우선 순위를 말하는 건데요, 사실이 의견보다 먼저라는 겁니다. 이걸 쉽게 표현하면, 자기 생각을 표현할 때는 먼저 어떤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말과 글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그 책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전개해야 하지요. 레포트나 논문을 쓸 때도 정확한 자료 조사와 연구, 실험과 다양한 통계들을 활용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걸 제안합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본 후에도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기보다 말하고자 하는 장면과 보도되었던 내용을 먼저 언급한 후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나 강연을 들을 때 글을 읽을 때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듣거나 읽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해가 되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요.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그게 쌓이면 강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국 그 사람의 말과 글에 대해 신뢰하지 않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이 먼저가 아니라 반대로 의견을 먼저 중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사실이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 따라 ‘현실 대상’인 ‘사실’을 이리저리 꿰맞추어서 들이댈 가능성이 높거든요. 어린 아이들이 거짓말 할 때를 생각해 볼까요? 먼저 어린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왔습니다. 그럼, 어린 아이들은 먼저 야단맞을 생각을 하겠지요. 그런데 엄마, 아빠의 야단이 야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벌이나 매까지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실을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공부하다가, 학교에서 선생님을 돕다가, 오다가 나쁜 사람에게 걸려서, 자기가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의 친구들과의 급한 약속을 잊고 있어서 등 거짓말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지요.
신문이나 방송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왜곡 보도, 편파 보도를 일삼는 신문과 방송들은 자기 회사의 논조와 색깔에 맞추어 보도하거나 방송을 합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람과 사건이 자기 회사와 관련이 있다면 아예 보도와 방송을 하지 않기도 하지요. 현재 종편 방송체제 출범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반대 여론이 높은 건 이렇게 왜곡되고 편파적인 언론과 방송 환경을 만들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시작을 우리는 방송 첫날부터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셈이지요.

앞의 사례들은 모두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글입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쓴 글이 아니고 사실-의견-사실-의견 식으로 뒤죽박죽으로 쓴 글이지요.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과 의견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마구 섞어서 말을 하지요. 이렇게 말하고 글을 쓰면 의사 전달이 정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두 사례들은 모두 <① 사실은 사실이고, 의견은 의견이다>라는 걸 지키지 않은 글이지요. 무엇이 사실이고 의견인지 중요하지 않고 많이 말하고 쓰면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잘못된 습관입니다. 이걸 좀 과장을 섞어서 표현해 보면, 남의 것과 내 것이 엄연히 다른 법인데, 남의 것이든 내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갖다가 쓰는 거와 똑같습니다.
또한 두 사례들은 <② 사실에서 의견이 나온다>는 걸 지키지 않은 글이기도 합니다. 사례 1의 경우, “그 분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걸 알 수 있었”다지만, 앞의 식사 도와주고 설거지 하고 방 청소를 했다는 걸 통해서는 이게 나오지 않지요. 이걸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가지로 그 사이사이를 메꿀 때 비로소 이해될 것이겠지요. 그리고 “장애인들도 사람이구나” 생각했다는데 “주변을 휠체어를 밀어 드리면서 산책을 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더 심각한 건 “대한민국의 장애인분들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데 도대체 이게 어디에서 나온 건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봉사 활동을 다녀오면 의례적으로, 입에 발린 소리처럼 하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서 이런 큰 결심이 나온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거라는 말입니다. 어느 곳에서라도 가서 봉사 활동을 하면 이렇게 글을 쓴다는 건 꼭 그 곳이 ○○○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건 의견에 사실을 맞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례 2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로 온 어린 왕자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겠죠. 미안함이란 이웃 주민에게도 느낄 수 있고 문방구 아저씨에게도 느낄 수 있고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등 여러 사람들에게서 미안함을 느끼겠지요. 그렇다고 그 모든 사람들을 친구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 경우도 형식적이지요. 입에 발린 소리처럼 글을 쓸 때도 형식적으로 어떤 글을 쓴 후에는 대게 이렇게 쓰더라는 식으로 쓴 글이라는 말입니다. 역시 의견이 앞서 있는 상태에서 이런 저런 책을 읽고는 그 느낌에 꿰어 맞춘 글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럼, 위 사례들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 2011. 12. 2 금



6. 글쓰기, 말하기 방법 ②
- 1. 문장은, 짧게!! 2. 내용은, 자세하게!!



# 사례 1 -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
“저는 ○○○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장애인들에 대해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장애인분들을 위해 여러 일들을 했는데요, 식사하는 걸 도와드리기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방 청소도 했는데, 그 분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휠체어를 밀어 드리면서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장애인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 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함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장애인분들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례 2 - 감명깊게 읽은 책
“어린 왕자는 소혹성 B612호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꽃과 양과 함께 살다가 지구로 오는데, 지구로 온 어린 왕자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저는 이를 통해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살던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되는데, 저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이 장면에서 나눈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친구란 서로 길들인다는 거고 길들인다는 건 서로 관계를 맺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친구 관계란 서로를 길들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왕자는 ‘나’를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와 만나서 10여 일을 함께 보낸 후 뱀에게 물려 결국 자기 별로 돌아가는데요, 이 장면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친구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 말하기 방법 두 번째는 “문장은, 짧게! 내용은, 자세하게!!”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내용은 이론에 해당되는 것이었다면 오늘은 어찌보면 실용적인 기술에 해당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기술을 배우더라도 분명한 방향과 원칙 속에서 배워라! 그동안 이걸 자주 말했는데요, 드디어 오늘 그 기술에 대해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쓴 글을 첨삭하고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역시 오늘도 어찌보면 이론적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글을 쓴 후 첨삭을 받는 건 아주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첨삭받지 않는 글은 잘 늘지 않으니까요.
선동열과 박찬호, 박지성이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주변에 전담 코치가 배치되어 투구폼과 공을 놓는 타이밍 등 여러가지를 점검하겠죠. 박지성 또한 체력에 대한 안배와 마인드 컨트롤 등 집중적인 점검을 받을 것이구요. 세계적인 선수들도 코치와 감독의 조언과 이전보다 더한 노력을 통해 슬럼프를 해결하려고 할텐데요, 아마추어 선수들은 어떨까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피나는 연습을 통해 프로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려고 하겠지요.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운동에 입문하게 도와준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스포츠 인생에서 감각을 깨우쳐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경기를 즐기게 도와준 사람도 있었다는데요, 이렇듯 수많은 선수들과 코치와 감독의 격려와 지도 속에서 한국의 대표선수나 세계적인 선수들이 되었던 거지요.
또 한 명의 운동선수를 말해 보겠습니다. 한두 개도 아니고, 7개 통합 타이틀을 획득한 한국이 배출한 세계 최고의 여자 권투챔피언 김주희 선수는 자신의 인생에서 언니와 권투,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주희 선수가 말한 감독님은 김주희 선수가 몇 개월 동안 기초 체력 훈련과 기본적인 원투 스트레이트 정도만 가르쳤다고 하지요. 세계 챔피언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김주희 선수를 한국챔피언이 되게 훈련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8개 체급의 통합 타이틀 챔피언에 도전하고 있는 김주희 선수가 기술보다는 자세와 생각, 의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투야말로 자신의 인생이자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김주희는 없었을 겁니다.
굳이 운동선수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 선수들이 머리로만 훈련한 게 아니라 피나는 연습을 했던 것처럼 글과 말 또한 자주 써 보고, 자주 말해 보면서 자꾸 첨삭 받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라는 거지요. 그들을 이끌어준 수많은 조언에 해당되는 게 바로 첨삭입니다. 첨삭은 글로 하는 것과 말로 하는 것이 있는데 첨삭을 받으면 반드시 수정해서 다시
2013-11-06 19:25:45
110.xxx.xxx.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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